난민 출신 명예 경기도민 1호 뒤에는 그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들 있었다

국민일보

난민 출신 명예 경기도민 1호 뒤에는 그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들 있었다

경기도민의 날 명예 도민증 받은 두와뭉구씨 이야기

입력 2018-10-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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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출신으로 명예 경기도민 1호가 된 데지레 두와뭉구씨(왼쪽 두 번째)가 지난 21일 가족과 함께 경기도 안산이주민센터를 방문해 박천응 목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산이주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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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열린 제1회 경기도민의 날 행사에서 명예 경기도민증을 받는 두와뭉구씨. 오른쪽 사진은 명예도민증. 안산이주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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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땐 마치 관(Coffin)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살해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 불안함이 먼저 다가왔죠. 뒤에 가족과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겁니다. 비행기에서 잠들 수 없었고 기내식도 먹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국에 왔어요.”

경기도 안산 다문화거리에서 지난 24일 만난 데지레 두와뭉구(41)씨는 처음 한국에 올 때의 상황을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안산에서 부인 및 네 자녀와 살며 금속코일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인 두와뭉구씨는 지난 18일 제1회 ‘경기도민의 날’ 기념식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명예 도민증을 받았다. 노란 동판에는 “귀하께서 우리 도의 발전에 기여하신 업적을 기리고 우리 도와 맺은 인연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하여 도민의 뜻을 모아 이 패를 드립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두와뭉구씨는 한국 입국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난민으로 인정받았으나 아직 영주권이 없는 상태다. 명예 도민증이라도 그에겐 한국이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느낌 자체가 소중하다. 경기도는 부룬디 출신 국내 커뮤니티를 이끄는 두와뭉구씨의 리더십과 그가 속한 아프리카 전통춤 공연단 ‘임보넨자 드러머스’의 문화 교류 활동을 공로로 인정했다.

그는 “큰 영광(Big Honor)”이라고 답했다. 두와뭉구씨는 성공회 목사였던 부친의 9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룬디는 다수파 후투족과 소수파 투치족의 갈등으로 1990년대 대량 학살을 겪었다. 이후에도 군부 쿠데타와 정적 암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두와뭉구씨는 그곳에서 학살에 저항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2016년 6월 살해 위협을 받은 뒤 맨몸으로 고국을 탈출해 에티오피아와 홍콩을 거쳐 한국에 왔다. 부인 휴게트 가힘바레(38)씨는 1993년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후투족 대학살 현장을 목격했다. 진상규명을 바라는 마음으로 2014년 이 학살 장면을 공공장소에서 증언했는데, 2016년 기류가 바뀌어 역시 살해 위협을 받고 르완다로 도피했다. 당시 한 살이던 사무엘라(3)를 비롯해 아비가일(6) 사라(9) 달린(16) 등 네 아이는 엄마 아빠와 이별해 지인 손에 맡겨졌다.

두와뭉구씨가 한국에 정착하고 가족과 재결합하는 데는 안산이주민센터를 비롯한 기독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안산이주민센터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서울서남노회가 설립한 기관이다. 30년째 이주 노동자들을 돌봐온 박천응 목사가 다문화교회와 함께 이 센터를 이끌고 있다.

센터는 두와뭉구씨의 일자리부터 알아봤다. 맨몸으로 빠져나왔기에 푼돈이라도 벌지 않으면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지난 6월에는 부인과 네 아이를 한국으로 초청하기 위해 항공료 500만원을 대출 형식으로 중개했다. 대출금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 입주한 비영리 소액금융 봉사단체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한국에 연고가 없는 두와뭉구씨에게 500만원의 목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없었기에 박 목사와 센터 실무자인 김문정 목사가 보증인으로 나섰다. 덕분에 두와뭉구씨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 지 2년여 만인 지난 8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눈물의 재회를 할 수 있었다. 대출금은 두와뭉구씨가 매달 15만원씩 3년 조건으로 상환하고 있다.

한국어를 못해 일단 중학교 예비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달린을 위해 대덕전자와 한국이주민건강협회가 장학금을 내놨다. 미취학 아동인 셋째 아비가일과 넷째 사무엘라는 센터의 보육시설인 ‘코시안의 집’에서 돌봄을 받는다. 엄마 가힘브레씨가 매일 두 아이를 맡기러 오는데 버스비가 없어서 센터는 엄마에게 매달 5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왜 이렇게까지 도울까. 박 목사의 대답은 이랬다. “예수님도 난민이었어요. 헤롯왕의 영아 살해를 피해 요셉 마리아와 함께 이집트로 갔는데 그때 이집트에서 ‘너희 나라로 가’ 이랬으면 어땠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못하고 헤롯왕 손에 돌아가셨을 거예요. 모세도 죽을 위협에 있다가 이집트 왕실에서 강가의 바구니를 거둠으로써 난민을 도와준 거죠. 모세를 살림으로써 한 사람이 아닌 한 민족을 살린 거잖아요. 교회 전도를 생각해 보세요. 결국 생명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성경대로 난민을 돕는 겁니다.”

안산=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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