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죄’라는 말의 죄를 씻으며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죄’라는 말의 죄를 씻으며

입력 2018-11-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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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진리’ ‘거룩’ ‘천국’….

굉장한 단어들이다. 그냥 단어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작은따옴표로라도 묶어 특별대우를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기독교가 이런 단어들을 너무 커다랗게 또는 너무 권위적으로 사용하며 남용하는 바람에 세상 사람들과 불화하고 어색한 관계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 ‘복음’ ‘전도’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만 사용되고 교회 밖으로 나가면 제2외국어도 아닌, 진화가 덜된 세계의 언어처럼 들려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우리가 신앙의 언어를 오염시키지 않으려면 우선 언어를 작게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작은 언어로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개념의 이해가 아니라 그 언어를 하나의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사건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금 여기서 실제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자잘한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주 성경묵상모임에서 ‘소망’이라는 단어를 나누다가 이스라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땅을 사는 사건(렘 32:6∼15)에 주목했다. 그 땅은 바벨론 군대가 진격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전혀 가치가 없는데도 예레미야는 땅을 샀다. 하나님의 회복을 바라는 소망의 구체적인 행동을 하나의 사건으로, 실제 삶과 밀접히 관련 있는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히브리어로 말(word)을 뜻하는 드바르(dabar)라는 단어가 있다. 여기에는 사건(event)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즉 말이 사건이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말은 실제 사건이 됐다. 신앙인이란 이처럼 ‘말이 안 되는 말’이 말(dabar), 곧 사건이 되는 것을 경험하는 자들일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하는 말, 사용하는 언어를 오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보여줘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공감하기는커녕 이해조차 힘든 언어를 우리의 성 안에서 우리끼리 입을 앙다물고 비장하게 말하다가 도리어 우리의 귀가 먼저 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금이라도 작은 언어로, 감각할 수 있는 말로 하나의 사건으로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신앙언어를 살필 일이다.

며칠 전에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문학공부모임에서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글을 발표했다.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밝힌 몇몇 친구들이 마지막 문장에서 ‘아멘’이라 말할 뻔했다고, 신기하게도 구원이라는 단어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말해줬다. 무엇보다 그동안 덕지덕지 때가 묻어있어서 골동품 창고에 던져버리고 이미 폐기처분한 단어를 다시 꺼내 와서 씻어준 느낌이라고 말해줬다. 늦은 밤 돌아와서 다시 글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겨우 내 손가락 하나부터 잘 건사하고 싶은 마음, 밥상 위에 떨어진 밥알 하나를 숟가락 위에 올려놓는 정성과 같은 아주 사소하고 자잘한 언어로 구원을 표현한 내용이었다. 수직으로 전달한 권위 있는 메시지가 아니라 수평으로 사사로이 말을 걸어본 작은 언어사용이었다.

성경묵상집을 만들면서 편집자들과 함께 늘 고민하며 공부하는 지점이 있다. 죄, 구원, 믿음과 같은 이 커다란 언어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곁에 어떻게 하면 나란히 놓아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너무 쉽게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등의 큰 진술을 남용함으로써 자칫 그들로 하여금 말로만 죄를 회개하는 거짓 삶을 살게 하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인은 ‘죄’라는 시에서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겁처럼 신성한/죄란 말/ 오염시키지 말자”고 다짐했다. 더는 죄란 말, 구원이란 말, 천국이란 말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신앙 언어부터 작고 선연하게 사건으로 나타내는 훈련이 필요한 시간이다.

김주련(성서유니온선교회 대표)

반려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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