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집값, 과연 잡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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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집값, 과연 잡힌 걸까

입력 2018-11-0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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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보면 집값이 잡힌 것 같다. 지난주 집계된 서울 강남 3구 아파트값은 전주와 비교해 떨어졌다. 강남구는 14주 만에, 서초구는 18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월별 통계도 같은 추세를 말하고 있다. 서울 집값은 10월에도 0.51% 상승했지만 그 폭은 9월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중개업소에 호가를 낮춘 매물이 등장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모두 9·13 부동산 대책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해 8·2 대책을 비웃으며 폭등을 거듭하던 서울 주택시장은 확실히 조용해졌다. 9·13은 문재인정부가 내놓은 8번째 부동산 대책이었다. 마침내 대책이 통했다. 정부가 시장을 이긴 듯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보면 10월에 계약이 이뤄진 아파트 매매는 현재 770여건이다. 거래신고는 두 달 안에 하면 되는 거여서 이 수치는 늘어날 수 있지만 9·13 이전인 8월 거래량 1만4910건에 비하면 급감할 게 확실하다. 하루 평균 거래신고 건수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양도세 중과 시행과 함께 거래가 실종됐던 4월 수치에 근접했다. 거래는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있어야 이뤄진다. 9·13과 그 연장선에 있는 금융 규제의 핵심은 대출을 완전히 틀어막아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든 것이었다. 11월 말이면 더 뚜렷한 거래절벽 통계가 나올 테고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런 상황이 이어질 거라고 말한다.

거래 실종을 시장 안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난센스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시장 왜곡에 더 가깝다. 수도권에 주택 30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그 집을 다 지으려면 4∼5년은 걸린다. 지금 집값이 주춤한 현상은 공급이 아닌 수요를 인위적으로 통제해 나타났다.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줄어든 게 아니라 집을 살 수 있는 길이 막힌 결과로 보는 게 맞다. 전통적인 주택 수요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내 집에서 살기 위한 실수요와 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수요. 최근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려면 이것을 좀 더 세분화해야 한다.

건축기술이 발달한 덕에 요즘 짓는 아파트는 기존 아파트와 확연히 다른 삶의 질을 제공하게 됐다. 성냥갑 아파트에서 주상복합을 거쳐 커뮤니티 아파트로 진화하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의 인기를 단순히 투기로 여기는 시선은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것이다. 내 집을 넘어 새 집에 살려는 욕구가 결코 작지 않다. 고성장이 멈추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아파트를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로 여기는 이들도 급증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론 더 나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다른 재테크 수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한국 경제의 현실에서 아파트는 가장 확실한 투자처가 됐다. 올해 서울 아파트 구매자의 30%는 30대였다. 주택 수요를 주도하던 40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 젊은이들은 집을 사지 않으면 뒤처질까 불안해서 아파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내 집 수요, 새 집 수요, 사다리 수요, 불안 수요, 투자수요…. 집을 사려는 욕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투기를 타깃으로 삼은 정부 대책은 시장에서 매수자를 사라지게 할 뿐 이런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요는 여전히 부동산 시장에 잠복해 있다. 규제에 적응이 되거나 균열이 생기면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그 힘은 눌린 만큼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연말부터 내년까지 전국에서 약 30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리게 된다. 수도권 30만호 공급 대책에 보상금 규모가 크게 늘었다. 과거의 경험은 이 돈이 다시 아파트 수요에 가세할 거라고 말한다. 규제가 만든 거래 실종과 수요 잠복을 놓고 집값이 잡혔다고 안도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교육 문제를 입시제도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 됐다. 학벌사회와 기회 불평등을 해소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 집값도 부동산 정책만으론 풀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돼 가고 있다. 아파트를 사려는 다양한 욕구를 우리 경제가 상당 부분 해소해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정상적인 시세 그래프가 그려질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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