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코리아타운’ 노숙인과 공동생활하며 보살피는 미국성공회 LA교구 김동진 성제임스교회 신부

국민일보

[미션&피플] ‘코리아타운’ 노숙인과 공동생활하며 보살피는 미국성공회 LA교구 김동진 성제임스교회 신부

사랑의 쉼터 ‘길바닥 위 삶’ 품어 희망을 전하다

입력 2018-11-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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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미국 성공회 신부(왼쪽 두 번째)가 지난달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성제임스교회에서 노숙인 등으로 구성된 성가대와 함께 찬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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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을 위한 아둘람 쉼터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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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신부가 직접 만든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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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웨스턴 애비뉴. 대로를 따라 한국어 간판이 즐비한 이곳은 1960년대부터 형성된 ‘코리아타운’이 있는 곳이다. 밤이 되면 거리를 침대 삼아 지내는 노숙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곳엔 한인 노숙인도 여럿이다.

미국 성공회 LA교구의 김동진(62) 성제임스교회 신부는 한인 노숙인 23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는 성공회 소속 신부로서 안정적인 삶과 명예가 보장됐음에도 노숙인과 동고동락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가 운영하는 아둘람 쉼터는 웨스턴 애비뉴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3층 저택을 빌려 방을 나누고 거실에는 칸막이를 쳐 개인 공간을 마련했다. 부엌과 화장실은 같이 쓰며 수요일 밤이면 예배도 드린다.

지난달 27일 쉼터의 아침은 한 여성 노인의 고성으로 시작됐다. 그는 “냉장고에 둔 음식을 함께 나누지 말고 개인이 사용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사람들 간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이 여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만의 음식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김 신부는 “어이구 또 시작이네”라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다.

“노숙인 간 싸움인데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온다”는 질문에 김 신부는 “한때 쉼터에는 서울의 명문 A대 출신 노숙인 5명이 한꺼번에 머물던 적도 있었다”며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온 고학력 노숙인이 많은 게 쉼터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김 신부는 TV를 시청하고 있는 이모(67)씨를 향해 “오늘은 술 마시지 않고 있네”라며 인사했다. 이씨는 25년간 미국의 항공사에서 기내 정비를 하며 풍족히 살았다. 그러나 3년 전 폐암 진단과 함께 시한부 3개월을 선고받고 방탕한 삶을 시작했다. 부인과 사별한 뒤 가진 돈 전부를 한인 사회에 나눠주고 하루에 소주 여러 병을 마셨다. 죽기 전 한없이 먹고 마시자는 생각에서였지만 죽지 않았다. 알코올에 중독된 채 노숙인으로 지낸 그를 김 신부는 2년 전 쉼터로 데려왔다. 지금은 김 신부가 소속된 성제임스교회의 성가대원으로서 찬양을 하고 있다.

쉼터는 65세 이상으로 보살필 가족이 없는 동시에 일주일 이상 노숙을 한 사람만 가족으로 받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다리 한쪽이 의족인 사람, 틈만 나면 “내 예쁜 얼굴을 못생긴 얼굴로 바꾼 미국 정부를 고발하겠다”고 소리 지르는 여성까지 다양한 사람이 함께 지낸다. 한때 수백명의 종업원을 둔 무역업체 사장과 명문대 학생회장 출신 인물도 살고 있다.

하루는 한 노숙인이 집안 곳곳을 피오줌으로 적셔놓았다. 아침이면 똥이나 토사물 냄새가 진동한다. 밤낮으로 사람들 간 싸움이 끊이지 않지만 김 신부는 ‘허허’ 웃고 만다. 이날도 사람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함께 TV를 보며 사이좋게 야구 경기를 응원했다. 김 신부는 “여긴 웃음이 넘치는 전쟁터”라며 “내가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어서 이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가 미국에 온 뒤 27년이 흘렀다. 그의 별명은 ‘거지 왕초’다. 2000년부터 15년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일일 노동자들을 위해 라면을 끓였다. ‘한인 노숙인이 길거리에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에 2009년 쉼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110여명이 이곳에서 지냈고 스무 명이 취업해 집을 구했다. 한 해 한 명 이상은 장례를 치르며 7명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성제임스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는 성가대원이 됐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김 신부가 마음에 품은 성경 말씀이다. 그는 교구의 도움 없이 월급을 털고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쉼터를 이어오고 있다.

김 신부는 “크리스천이라면 주변의 어려운 이를 돕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성경에 명백히 나온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쉼터에서 지내는 박모(65)씨는 “김 신부는 미운 모습을 한 채 의탁할 곳 없는 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사는 이”라며 “툭툭 튀어나오는 전라도 사투리에 조폭 같아 보여 경건의 모양은 없을지 모르나 경건의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로스앤젤레스(미국)=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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