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개꿈은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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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개꿈은 축복

입력 2018-11-07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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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안녕하셨는지요. 혹시 무슨 꿈을 꾸셨습니까. 꿈을 꾼 것 같기는 한데 막상 이야기하려니 잘 기억나지 않고 연결도 되지 않고 무슨 이런 이상한 꿈을 꿨나 싶습니까. 그렇다면 괜찮은 꿈을 꾸신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상태의 꿈은 원래 줄거리가 엉성하고 제대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꿈을 꾼다고 잠을 제대로 못 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조금 줄거리가 있는 꿈을 꾸는 렘(REM)수면은 하룻밤 서너 번 옵니다. 낮의 기억이 우리 뇌 안에서 한 차례 다듬어진 뒤 뉴런 사이를 소행성처럼 떠다니다 때로는 충돌하고, 합쳐지고, 멀어지면서 꿈이 만들어집니다. 꿈속에서 과거와 미래처럼 나타납니다.

꿈은 기억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가 주인처럼 또렷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치게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만약에 꿈속에서 바로 그를 죽이고 도주하다 체포되는 논리적 전개가 펼쳐지면 잠자던 중이라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무의식이 떠올린 생각의 생생함에 고요한 잠은 방해받습니다. 차라리 그 미운 사람이 양처럼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지녔다면, 양의 이미지로 그 사람을 둔갑시켜, 양고기를 먹는 꿈이 낫습니다. 한 단계 가공을 거쳤기에 자던 잠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깨어나서는 왜 내가 양고기를 먹었는지 모를 수 있겠습니다.

논리가 무너진 개꿈은 큰 축복입니다. 그런대로 살고 있고, 무의식이 민낯을 드러내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예쁘게 잘 처리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일을 겪거나 상처를 입는다면 그 트라우마를 꿈에서 다시 경험하기도 합니다. 가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꿈속에 깃든 불안을 쉽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렷한 꿈보다 개꿈이 훨씬 좋습니다. 슬픈 일을 겪은 후 일주일 내내 비슷한 꿈을 꿉니다. 병원에 오던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네 분씩 돌아가시는 꿈입니다. 눈 뜨자 해석이 쉽습니다. 그 명료함이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꿈은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자꾸 그런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다시 줄거리를 설명할 수 없는 개꿈을 꾸고 싶습니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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