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의 잠든 신앙을 깨운 청년 김선웅의 ‘아름다운 20년’

국민일보

[단독] 우리의 잠든 신앙을 깨운 청년 김선웅의 ‘아름다운 20년’

‘손수레 할머니’ 돕다 뇌사… 7명에 새 생명 주고 하늘나라로

입력 2018-11-07 00:00 수정 2018-11-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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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선웅씨가 생전 제주시 제주성안교회 경배와 찬양팀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김선웅씨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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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주 복지로북길 식당에서 만난 아버지 김형보 집사(왼쪽)와 누나 김보미씨가 선웅씨의 성경책을 보는 모습. 이 식당은 선웅씨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다. 제주=장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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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가 보던 성경이에요.”

주인을 잃은 성경책이 누나의 손에 들려 있었다. 지난 3일 제주시 복지로북길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보미(30·회사원)씨는 지난달 3일 새벽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다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김선웅(20·대학생)씨의 누나다. ‘둥이’는 누나가 부르던 선웅씨의 애칭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식당은 김씨 아버지 김형보(56) 집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식당 바로 위가 선웅씨 가족이 사는 집이다. 사고는 집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목전에 집을 두고서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한 것이다.

누나가 가지고 온 성경책은 모두 세 권이었다. 곳곳에 선웅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예수 사랑 안에 살았던 청년의 짧은 삶이 느껴졌다. 누나는 인터뷰 내내 성경의 한쪽 끝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먼저 떠난 자식을 추억했다.

선웅씨는 사고 직후 뇌사에 빠졌다.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선웅씨는 사고 나흘 후인 7일 장기를 기증하고 눈을 감았다. 결정은 빨랐지만 그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깨어날지 모른다는 기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 또한 미련이라 확신했다. 오래전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선웅이가 여섯 살 때 아이들 엄마가 화장실에서 넘어지며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됐어요. 깨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눈만 뜬 채 3년을 더 살았죠. 그렇게 아내가 떠나고 장기기증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어차피 우리 곁을 떠났는데 다른 생명을 살렸으면 얼마나 의미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되니 자연스럽게 장기기증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붙잡고 있었을 겁니다. 이웃을 돕다 떠난 선웅이도 장기기증을 원했을 겁니다. 우리 아이의 꺼져가는 생명으로 7명을 살렸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김 집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떨렸다.

선웅씨 가족은 모두 제주성안교회에 출석했다. 그중에서도 선웅씨는 가장 착실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매년 두 차례 진행되는 교회 특별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기타를 잘 쳐 교회 경배와 찬양팀에서 활동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교회 유치부와 중등부 교사도 시작했다. “둥이가 특별새벽기도 기간이 되면 스스로 일어나 20분 넘게 걸리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어요. 누나인 제가 봐도 대견했죠. 사실 새벽 4시는 깨워도 못 일어날 시간이잖아요. 고등학생 때부터 토요일과 주일은 교회에서 살았던 아이입니다.”

선웅씨가 쓰러졌던 그날, 그가 할머니를 대신해 끌던 손수레엔 쪽파가 가득 실려 있었다. 아버지 부담을 덜겠다고 만화카페에서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젊은이의 생명과 바꾼 쪽파는 사고 직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구순 할머니의 손에 들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둥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가해자가 사과하러 왔었어요. 조만간 둥이가 있는 제주 양지공원 납골당에도 온다고 하네요. 저희도 둥이 만나러 가야죠. 참, 둥이가 있는 곳이 엄마와 겨우 다섯 칸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이웃사촌이에요. 엄마와 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위로가 됩니다.” 이 말을 하는 보미씨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제주성안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류정길 제주성안교회 목사는 “선웅이가 잠들어 있는 우리의 신앙을 깨우고 있다”면서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일곱 명의 생명을 살린 일을 통해 축복만 받으려는 신앙인들이 신앙의 본래 자리로 되돌아 올 수 있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선웅씨와 친했던 송명준(20·대학생)씨의 기억도 특별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신앙생활을 한 송씨는 “경배와 찬양팀에서 봉사하며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이나 ‘내 마음을 가득채운’ 같은 찬양을 열심히 연습했다”면서 “선웅이는 정말 착했고 늘 웃었고 만나면 반갑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고등학생 때 저의 신앙이 흔들렸는데 그때 선웅이 덕에 계속 교회에 나올 수 있었다”면서 “선웅이가 신앙을 회복하는 다리 역할을 해줬다”며 그리움을 전했다.

제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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