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인간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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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장윤재] 인간의 죄

입력 2018-11-09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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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죄’를 잘 믿지 않는다. 인간이 진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에 죄를 뜻하는 세 가지 낱말이 나온다. 첫째는 ‘아온’이다. 마음이 비뚤어져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헤타’다. 남의 것을 훔친다든지, 살인을 한다든지 하는 반사회적 행동을 가리킨다. 셋째는 ‘페샤’다. 신에 대한 반역을 뜻한다. 이처럼 구약성서가 말하는 죄는 자신에 대한 학대, 이웃에 대한 불의, 그리고 신에 대한 반역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다.

신약성서는 죄를 ‘하마르티아’라는 낱말로 표현한다. ‘표적에서 빗나감’ 혹은 ‘옆길로 빠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진리와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옆길로 빠진 것이 죄다. 이처럼 성서가 말하는 죄는 ‘상태’이지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가 죄다. 거기에서 거짓과 폭력과 탐욕이라는 행위, 즉 죄의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해 편협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첫째는 죄를 하나님과의 수직적 문제로만 축소시키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51편 4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언뜻 듣기에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죄를 자백하는 경건한 기도로 들린다. 문제는 이 기도가 다윗이 자신의 부하를 사지(死地)로 내보내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은 다음에 드린 기도라는 점이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에게만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다윗의 착각’이다.

이런 착각에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오류를 낳는다. 이웃과의 왜곡된 관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 개선만 추구하는 편협한 신앙이 나온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그것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유괴범을 아이의 엄마는 기독교인이 되어 사랑으로 용서하리라 다짐하고 면회를 간다. 그런데 면회장에 나온 죄인은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자신 역시 감옥 안에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한다. 아이의 엄마는 절망하고 절규한다. 그리고 그따위 값싼 용서를 베푼 하나님에게 저항한다. 이웃에 대한 책임은 무시하고 신과의 개인적 관계만 중시하는 신앙이 얼마나 왜곡된 거짓 신앙인지를 이 영화는 날카롭게 고발했다.

마지막 셋째로, 죄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죄를 소극적인 측면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유교적 전통과 혼합되어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어긴 것만 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등 무엇을 금지한 것을 어긴 행위만 죄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는 마치 부정의 종교, 터부의 종교, 금지의 종교로 비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많은 계명을 단 한마디로 압축해주셨다. 그것도 긍정화법으로 바꿔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고, ∼하라’였다.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책 ‘희망의 신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행하는 악이 아니라 그가 행하지 않는 선이며, 그의 악행이 아니라 그의 태만이다.”

죄에 대한 좁고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윗의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성서의 가장 심오한 통찰이 시대착오적인 미신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는 진보한다고 생각하나 실은 점차 타락해가는 우리 문명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히브리서 4:12).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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