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이스라엘 잉어

국민일보

[홍익희의 음식이야기] 이스라엘 잉어

입력 2018-11-2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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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잉어. 위키백과
이스라엘 건국 전부터 유대인들은 가나안으로 몰려들었다. 주로 러시아와 동구에서 이주해 온 이들은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겨울 우기에 내린 빗물이 고여 있는 저지대에 모여 살았다. 그런데 모기들이 옮긴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1920년대 모기를 피해 구릉지대 꼭대기로 촌락을 옮겼다. 문제는 물이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의 물을 파이프로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를 위한 농업용수도 필요했다. 유대인들은 물을 최대한 아껴 농사지어야 했다.

그래서 물을 작물 위에 뿌리는 대신 파이프를 이용해 뿌리 근처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효율적인 방식을 생각했다. 그 결과 농작물 뿌리 부근에 땅속으로 고무호스를 연결해 물이 다른 데로 새어나가지 않고 정확히 뿌리에 흡수되도록 하는 관개시스템을 고안했다. 땅속의 파이프에서 일정한 시간마다 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려 식물 뿌리에 필요한 만큼의 물을 공급해줄 수 있는 점적관개(drip irrigation) 기술이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해저 221m 갈릴리 호수에서 퍼 올린 물을 사막 어느 암반층에 저장했다. 그런데 물에 녹조가 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녹조를 먹고 자랄 수 있는 물고기를 생각했다. 결국 섭씨 38도, 민물과 해수 중간 염도인 이 물속에서 살 수 있는 생명력이 강한 물고기를 ‘개발’했다. 이로써 비늘 없는 독일 잉어와 이스라엘 토착 잉어와의 교접에 의한 개량 품종이 탄생했다. 바로 이스라엘 잉어다.

우리나라는 먹거리가 부족했던 1973년에 이스라엘 농무성을 통해 치어 1000마리를 들여왔다. 그 뒤 양식에 성공해 78년부터 전국 호수에서 대대적인 가두리 양식이 시작됐다. 우리 양식업자들은 냄새나는 물고기라 하여 이를 향어라 불렀다. 90년대 후반까지 내수면 양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공급이 많은 만큼 유료 낚시터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97년부터는 수질보호를 위해 호수의 가두리 양식장이 사라지면서 향어 양식은 중단됐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