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청년들이 단단히 뿔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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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청년들이 단단히 뿔난 까닭

입력 2018-11-2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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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빈곤→고립→우울증으로까지 내몰리는 청년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환상도 깨져
정부가 그들의 눈물 닦아줄 수 있을까


희망이 크면 절망도 큰 법이다.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이 딱 그 심정일 듯하다. 그들은 문재인정부 출범에 공을 세웠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행복한 세상이 올 것으로 잔뜩 기대를 했던 세대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6개월 동안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고통만 커지고, 공정한 경쟁의 룰마저 크게 훼손된 상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지경까지 몰린 이들이 늘면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구조적 요인도 있고 프랑스와 아일랜드 등지에서 보듯 적지 않은 나라에서 청년들이 곤경을 겪고 있지만, 국정운영을 책임진 현 정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뚝뚝 떨어진 까닭이다.

청년들의 실망과 자괴감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는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실종이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문 대통령이 요즘도 애호하는 말이다. 얼마나 멋진 구호인가. 청년들이 지난 대선 때 소중한 한 표를 주고, 정부 출범 직후 열광했던 건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울산 중견기업에서 벌어진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고용세습 요구 사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절절매는 청년들의 한숨과 분노를 깊게 만들고 있다. 다른 유사한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드러나지 않은 불공정하고 불의한 경우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청년들의 채용기회를 박탈한 민주노총에 대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 법한데 정부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댈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정부는 ‘놓칠 수 없는 집토끼’여서 그런지 감싸 안으려 한다. 이를 간파한 민주노총은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득권을 최대한 확대할 태세다. 청년들이 어떻게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환상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 등으로 인한 실업 문제가 청년들을 압박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청년 5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 상태라고 한다. 청년 취업자는 계속 줄고 있다. 취업하더라도 기성세대와의 임금 격차 등으로 소외감을 느끼기 일쑤다. 알바도 고달파졌다. 임금 상승을 견디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이 근무시간을 줄이자 예전에는 한 곳에서 알바하던 청년들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른바 ‘메뚜기 알바’다. 주휴수당 때문에 1주일에 15시간조차 일하지 못하는 알바가 급증하고, ‘알바도 빽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방침이 청년백수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기업들이 정부 방침에 맞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신규 채용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까지 겹쳤으니 ‘일자리 증발’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취업 걱정하지 않아서 얼마나 좋을까’라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고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부 청년들은 취업 준비나 먹고살기 위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직장인으로서 첫발을 떼기도 전에 빚더미에 앉게 되는 ‘빈곤청년’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한다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면서 집값이 폭등했다거나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는 등의 뉴스를 접하면 박탈감과 울분이 치솟는다. 특히 가슴 아픈 부분은 이런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친구나 친인척과의 만남을 피하고, 나아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

청년들 사이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등의 ‘힐링 에세이’가 인기라고 한다. 마음의 위로를 받으려는 청년들이 많다는 얘기며, 그만큼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의미다. 마음이 짠한 현상이다.

서울 등 중부지방에 24일 첫눈이 펑펑 내렸다. 혹자는 스키장 갈 계획으로 들떠 있겠지만, 엄동설한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하는 청년들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들의 눈물, 누가 닦아줄 것인가.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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