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다 바쳤는데…” 돌아온 선교사의 쓸쓸한 고국 생활

국민일보

“열정 다 바쳤는데…” 돌아온 선교사의 쓸쓸한 고국 생활

은퇴 선교사의 쉼터 ‘생명의 빛 홈타운’ (상)

입력 2018-12-04 00:00 수정 2018-12-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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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복지재단은 은퇴 선교사들이 안정적으로 머물며 다문화가정 사역 등에 경륜을 활용할 수 있도록 경기도 가평에 ‘생명의 빛 홈타운’을 건설하고 있다. 사진은 한 교회 단기선교팀이 선교지를 둘러보는 모습. 국민일보DB
“요새는 ‘차라리 제 몸을 고쳐 주세요, 다시 가겠습니다’ 하고 기도해요. 한국에선 어떤 것도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경기도 수원의 한 임대주택에서 최근 만난 이영경(가명·64·여) 선교사는 말 한마디 떼는 것도 힘들어했다. 신부전증으로 신장 기능이 10%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는 이틀에 한 번씩 신장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손님이 온다고 준비한 냉동 망고와 아보카도가 담긴 접시를 내오는 일도 쉽지 않아 보였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24년간 교회 10여곳을 개척하고 유치원과 성경학교를 세웠던 열정적 선교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다리가 조금씩 붓기 시작하더니 잘 걷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차에 오르는 것도 힘겨웠다. 급히 수도의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한 달에 2000달러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자니 ‘하나님이 내 몸을 다 쓰셨구나’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며 “파송한 교회에도, 선교지에도 폐를 끼칠 수 없어 귀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20여년 만에 다시 살게 된 한국은 다른 세상이었다. 이 선교사는 “당장 짐을 풀고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없었다”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한 지인의 도움으로 선교사들이 잠시 한국에 방문하면서 머무르는 선교관에서 4일을 보냈다. 이후 20일 동안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뒤 1년간 요양병원에 머물렀다. “아직 젊은데 여긴 왜 왔대?” 이 선교사가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후 가족의 도움으로 임대아파트를 구했다. 파송 교회나 소속 교단의 도움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줬다는 휴대전화에는 총회 독신여선교회에서 보내준 성경말씀 메시지가 보였다. 그는 “국가에서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준다”면서도 “선교지에 나가 있는 동안 세금도 제대로 내지 못했는데 부끄러울 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간신히 살 곳을 찾은 뒤에야 몸져누운 주변 선교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교제하는 선교사들과 은퇴 후 삶에 대해 말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 ‘선교지 내 양로원에서 계속 사역하겠다’는 반응들이었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을뿐더러 계획을 세워도 막막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사역지에서의 치열함을 잃은 이 선교사에게 삶은 무료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국가 지원으로 설치한 텔레비전을 본 뒤 7시30분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오전 내내 신장 투석 치료를 받고 점심식사를 하면 정오다. 오후에는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는다. 전기요금을 아끼겠다며 전등도 대부분 끄고 산다고 했다.

다시 찾은 교회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에 전도사로 섬겼던 교회였지만 아는 사람도 반기는 이도 없었다. 그는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해 뒤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온다”며 “성도 3분의 2가 바뀌어서 교제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선교지에서 돌아온 은퇴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이 선교사는 단박에 “머물 곳과 사역지”라고 말했다. 건강만 허락하면 국내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은퇴 선교사들이 많다고도 했다. “몸을 누일 거처와 예배 처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만 있다면 은퇴해도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수원=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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