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의 뺄셈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하나님의 뺄셈

창세기 22장 1~4절

입력 2018-12-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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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을 요구하십니다. 시험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빼앗기 위해 오셨습니다. 덧셈에서 뺄셈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삭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이삭에 대한 세 가지 수식어를 열거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이삭’이라는 이름을 부르십니다. 이삭이 누구의 소유인지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뺄셈이 필요할 때 철저하게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빛나는 순종을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엄청난 명령에 이튿날 일찍 떠날 차비를 했습니다.(3절) 아브라함은 토씨 한 번 달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명령은 이성적으로 볼 때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고향을 떠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스스로의 약속과 상반되는 무리한 요구를 아브라함에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할 말이 없어 안한 게 아닐 것입니다. 신앙이란 할 말을 하고 싶을 때 침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신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실 때 기한을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흘 뒤나 1년 뒤에 움직여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빠르게 순종합니다. 빈틈이 없었습니다. 제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조리 챙겼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직접 준비했습니다. 모리아 산에 나무가 있었을 텐데도 아브라함은 굳이 장작을 패서 준비했습니다. 불과 칼도 준비했습니다.(6절) 제사용 칼은 짐승의 심장을 찢어 위로 올렸다가 밑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에 양쪽에 날이 예리하게 서 있습니다. 칼을 갈면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뚝뚝 흘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불필요한 마찰을 사전에 방지하는 지혜로운 순종을 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려는지 이삭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6절에서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질 정도였으니 적어도 13~14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아내 사라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둘째,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이 있는 예루살렘까지는 대략 75㎞입니다. 이 거리는 보통 사람 걸음으로 20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꼬박 사흘 길입니다. 사흘을 걸은 후 아브라함은 종들과 작별했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은 혼자 감당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종들과 헤어지면서 놀라운 말을 합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이삭이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 부활 신앙이 언제부터 싹텄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부활 신앙이 고난 뒤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공급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고 아브라함과 후손의 미래를 보장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핵심은 숫양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받은 믿음의 보상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만민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인증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창 22:16~18)

죽기까지 순종하는 신앙, 곧 뺄셈의 신앙은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축복을 이끌어 낼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처음도 과정도 결론도 아름다웠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뺄셈의 신앙이 주는 축복을 누리십시오.

권영삼 광교사랑의교회 목사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