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늑장 졸속 밀실 3종세트 예산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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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칼럼] 늑장 졸속 밀실 3종세트 예산심의

입력 2018-12-05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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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시한 준수 여부에 여론 관심 많지만 예산 분배를 왜곡하는 졸속심의가 더 큰 문제
밀실서 몇몇이 진행하는 ‘소소위’ 예산이 어떻게 삭감·증액됐는지 빠짐없이 공개해야


국회가 예산안 법정시한을 올해도 지키지 못했다.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시한을 지키겠다며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까지 도입했지만 소용이 없다.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는 11월 30일까지 심의를 마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한 2014년만 제외하고 올해까지 4년 연속 시한을 어겼다.

헌법에 따르면 9월 3일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가 의결했어야 한다. 2000년 이후 총 19번의 예산안 가운데 18번의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어겼다. 말이 법정시한이지 형식적인 권장사항으로 전락했다. 일부 야당은 선거제도 개혁과 예산안을 연계하거나 농성까지 벌이고 있어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9일까지 예산안 처리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여론의 관심은 주로 법정시한을 지켰는지 여부에 쏠리는 경향이 많지만 사실은 졸속 심의가 더 큰 문제다. 법정시한이 형식적인 문제라면 졸속 심의는 내용에 관한 문제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9.7%나 늘어나 470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이다. 막대한 국가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도록 심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3년 국가재정법 개정으로 심의 기간이 60일에서 90일로 늘었는데도 졸속 심의는 여전하다. 미국은 8개월, 영국 독일 프랑스는 4~5개월 동안 심의한다. 영국 캐나다 등은 아예 예산안 편성 단계부터 의회와 행정부가 협의한다.

국회는 예산안이 9월 3일 제출됐는데도 날짜를 허비하다 법정시한을 30일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 심의를 시작했다. 11월 6일 행정안전위의 예산심의 소위원회가 올해 예산안 예비심사를 위한 첫 회의였다.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등이 있어 예산안 심의를 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심의 기간이 한 달 정도에 불과하니 졸속 심의를 피할 수 없다. 이마저 잦은 국회 파행으로 심의가 중단되곤 했다. 채용비리 국정조사 등을 둘러싼 여야간 이견으로 예결위가 공전되거나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열리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예산소위의 연 평균 가동일은 15일에 그쳤다.

국회 예결위원들의 예산안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하기보다는 대충 훑어보는 수준이다. 해마다 예산을 졸속으로 심사하다 보니 다음해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관례가 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처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설 위원회 체제로 운영하거나 정부가 예산안 제출 시점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의회가 정부 예산안을 수정, 삭감, 증액할 수 있는 권한도 선진국과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의회의 예산 심의는 정부안과 완전히 다른 예산안이 나올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진행된다. 행정부의 예산안 편성은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예산안에 대해 국회가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미미하다. 대부분 0.2% 미만의 액수에 대해 수정이 이뤄지고 있고 많아도 1%를 넘은 적이 없다.

무엇보다 예결위가 쟁점 예산을 이름도 특이한 ‘소소위’라는 비공식 회의체에 넘긴 것을 놓고 논란이 많다. 여야 3당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 등이 참여하는 소소위는 국회의 공식 기구가 아니다. 소소위는 국회 본관 2층 예결위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근 채 심의를 한다. 언론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회 속기사도 없고 회의록도 없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다. 소소위가 국회의 공식기구가 아니어서 심의 과정 공개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여야의 주장이다. 국민들의 알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방대한 예산에 대해 몇 사람이 모여서 하는 벼락치기 심의가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소수의 인원이 밀실에서 예산안을 만지작거리는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경쟁적으로 챙기는 쪽지예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료 의원들의 부탁을 받고 특정 지역, 특정 항목의 예산을 넣고 빼는 것 자체가 불공정이고 적폐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힘 있는 국회의원, 정부 또는 여당 중심의 선심성 예산 배정과 관련 있는 쪽지예산은 불건전 예산을 예산안에 반영시킬 뿐만 아니라 예산 분배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예산이 어떻게 수정됐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국회는 소소위에서 감액되거나 증액된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법정 시한도 못지킨 국회가 예산 심의마저 불투명하게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신종수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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