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진실한 위로

국민일보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진실한 위로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지음/손성현 옮김/포이에마

입력 2018-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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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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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페로프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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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통해 문학과 신학이 하나로 융해되는 거대한 용광로를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스토옙스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살인자, 창녀, 주정뱅이, 백치, 죽음을 앞둔 사람과 같이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인물을 통해 인간심리의 지하갱도를 파내려간다. 독자들은 주인공을 마주하면서 베일 뒤에 가려진 수수께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독자들이 ‘자기’를 발견하길 원했다. 그는 인간 안에 있는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핵심적인 경향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질문과 같다고 말한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흐름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물들은 모두 아파 보인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상처 때문인 듯하다. 그 상처는 곧 삶에 대한 질문이다. 깊고도 집요하게 질문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대답을 찾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 속에서 참된 회복을 맛보게 된다.”(67~68쪽).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영원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나 평범한 인간에도 미치지 못해 파멸하고, 절망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알아차리며, 자신도 모른 채 저 너머에 있는 완전한 무언가를 가리키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죄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다른 사람들과 ‘죄의 연대’를 이룰 때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이 임한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결말은 몰락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말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아버지를 죽인 누명을 쓰고 형무소에 갇힌 큰아들 미챠 카라마조프의 목소리를 그대로 수록했다. “알료사. 나는 지난 두 달동안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을 발견했단다.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부활했어! 이 사람은 전에도 항상 내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악천후를 보내주지 않으셨더라면 내 안에 이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거야.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완전히 다른 건데… 내 안에서 부활한 그 인간이 다시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걱정이고 두려움이야.”(21쪽)

이 책이 위대한 점은 따로 있다. 현대신학의 이정표가 된 칼 바르트의 ‘로마서’를 타오르게 한 불쏘시개가 됐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투르나이젠의 발견이 없었다면 나는 로마서의 초고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신학의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한 책은 1921년 투르나이젠이 아라우 대학생 총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해 같은 해에 독일에서 출간됐다.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였던 저자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지우려는 신학이 야기한 위기에 주목했다. 그 극복할 가능성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에서 찾았다. 정교회 신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개혁주의 목회자 투르나이젠을 통해 현대 개신교 신학에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바르트와 투르나이젠이 당시 독일어권 신학에서 낯선 이름이었던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세계로 빨려들어 가게 된 계기는 1915년 접한 ‘죄와 벌’이었다. 옛 번역본은 신학적 함의가 매우 강한 ‘죄와 속죄’다. 죄와 속죄의 대립 구도는 사고의 방향과 글쓰기 방식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발휘했다. 이들은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과 ‘인간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를 택하며 대립을 계속하기보다는 둘 사이의 긴장을 사유와 언어 속에서 생동적으로 포착하는 변증법적 방식을 배웠다.

책은 인간의 종교심 문화 역사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시작하는 신학, 죄와 용서의 긴장을 잃지 않는 신학을 통해 ‘지옥’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실 된 위로를 전하는 현대신학의 고전이다.

스위스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저자는 바르트와 함께 변증법적 신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와 함께 이뤄지는 그의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구원의 빛이 보인다. 저자는 구원에 이르는 고통과 용서와 희망의 변증법을 치열한 언어로 짚어낸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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