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식도락을 넘어 은총의 성찬으로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식도락을 넘어 은총의 성찬으로

입력 2018-12-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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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과 ‘쿡방’ 전성시대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연예 오락 문화의 중심엔 음식이 있었다. 고급 셰프들의 진수성찬부터 편의점 패스트푸드의 진화까지 한국인들은 온통 먹는 것에 몰입하고 있는 듯하다. 요식업 신화를 이룬 사장님의 비법과 맛보기 ‘전문가’들의 토론, 셰프들의 요리 대결과 숨어있는 ‘맛집’ 찾기, 나아가 엄청난 양의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묘기 등이 방송과 포털 사이트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지배한다.

동네마다 TV에 나왔다는 식당들이 넘쳐나고 도대체 누가 기준을 정한 것인지, 전국에 족히 수천 개쯤 될 것 같은 ‘3대 맛집’들은 여기저기서 생활 미식가들의 식탐을 자극한다. 이를 비판하면서도 막상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 채널에 손끝이 고정돼 있는 나의 ‘원초적 본능’ 앞에 고상한 지성과 이성의 허구를 깨닫기 일쑤다.

음식은 문명과 자연의 매개다. 요리하는 인간, ‘호모 코쿠스’(Homo coquus)! 오직 인간만이 자연이 제공하는 식물을 그대로 먹지 않고 요리한다. 요리가 없었다면 먹는 즐거움도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르벨에 따르면 요리의 기원엔 두 가지 영역이 있다.

하나는 민중적 기원으로 지역의 제철 산물을 갖고 조상 때부터 이어져온 조리 기술과 기구를 이용해 풍미를 간직한다. 다른 하나는 궁중요리로 대변되는 학술적 기원이다. 이는 전문가들이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창의적 실험을 함으로써 이뤄진다.

뛰어난 요리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잘 조합된 사례들일 것이다. 이런 전통과 혁신을 통해 요리는 점점 더 복잡하고 화려해지지만,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가공을 최소화한 자연식에 대한 관심도 나타난다.

음식은 또 사람과 사람의 매개다. 인간의 삶 속 친교가 있는 곳엔 늘 먹을 것이 있다. 음식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관계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인간 문명은 식탁을 둘러싸고 이뤄진, 사랑과 우정과 사업과 권세와 야망과 음모에 이르는 고차원적 사회성이다. 좋은 식사란 이처럼 매우 총체적인 경험이다. 단지 음식의 맛을 넘어 특정 장소와 상황,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반사적 감각작용이 이뤄진다. 음식은 낯선 사람들의 어색한 관계를 풀어주고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공동체성을 강화해주는 신령한 매개다. 그래서 우린 늘 누군가에게 “밥 한번 먹자”고 말하며 소셜 라이프를 유지한다.

먹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이 시대 문화 속에 ‘혼밥’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하고 있다. TV에 펼쳐지는 맛의 향연 앞에 즐거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고 씁쓸한 이유는 관계가 거세된 식문화의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의 친밀한 친교와 나눔을 의미하는 코이노니아에 있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영적인 활동 외에 날마다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며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됨을 실천했다(행 2:42~47).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잔치의 비유로 자주 표현했는데, 교회에서 이러한 식탁의 교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누리는 예배의 연속이며 축제였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행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그분이 소위 죄인들과 어울리며 함께 식사를 나눈 것이다(막 2:16).

관습적이고 피곤한 음식문화를 뛰어 넘어 가족과 이웃 간의 관계 회복을 이루는 성찬과 애찬을 마련해보자. 교회 친교 시간 우리가 나누는 소박한 식사 한 끼에서 우리는 혈연을 뛰어넘는 진정한 식구(食口)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음식은 하나님께서 자연과 이웃을 통해 베푼 가장 신성한 것이다.

윤영훈(성결대 교수)

약력=성결대 및 미국 뉴욕 얼라이언스신학대학원(MDiv) 졸업, 드루대 철학박사(PhD·기독교문화 전공). 현 성결대 신학부 교수, 빅퍼즐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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