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6) 피아노 반주자에 반해 “하나님, 저 여자 내 겁니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박종호 (6) 피아노 반주자에 반해 “하나님, 저 여자 내 겁니다”

부담 컸던 아내 교회 발길 끊어… 금식기도 끝에 만나 “결혼합시다” 34년간 함께한 아내에 고마움

입력 2018-12-06 00:01 수정 2018-12-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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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장로가 1985년 2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아내와 함께한 모습. 결혼식은 이보다 한 주 전에 올렸다.
내 삶의 동반자인 아내 김선아는 1984년 12월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했던 경기도의 한 개척교회에서 만났다. 아내는 교회 내 유치원 교사였다. 유치원 교사들은 주일마다 교회로 와 성가대석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내 눈에 띄었다. 피아노 앞에서 반주를 하는데 뚜껑 사이로 비스듬히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외모가 반듯하니 잘생겨 눈에 띄었다. 나는 찬양하다가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하나님, 저 여자 내 겁니다.”

찬양을 마친 뒤 설교 시간에 나는 성가대 활동을 함께하는 학교 성악과 후배들에게 쪽지를 돌렸다.





‘성가대 첫줄 왼쪽 세 번째 앉은 여성분께 예배 마치고 나갈 때 형수님이라고 불러라.’ 능글맞은 후배들은 내 부탁대로 낮고 굵은 목소리로 ‘형수님’이라며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내는 처음 본 남자들이 자신을 형수님으로 부르는 걸 듣고 아연실색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슬쩍 다가가 ‘반갑습니다, 자매님’이라고 악수를 청했다. 엉겁결에 악수를 받는 아내를 보며 또 다시 생각했다. ‘당신은 내 여자’라고.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봐 안 것이지만 그 당시엔 나를 보며 무조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100㎏을 훌쩍 넘는 덩치 큰 사내가 돌연 다가왔으니 아무래도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 주 예배부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흔들림 없이 아내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 교회 사모가 아내를 괜찮은 여성이라며 만나보라고 추천한 것도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나는 아내와의 인연이 하나님 뜻인가 싶어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아내는 아예 교회에 발길을 끊어버렸다. 금식이 끝나는 대로 아내에게 연락해 서울 반포의 한 레스토랑으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나오긴 했지만 아내는 땅만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나도 공연히 천장만 바라보며 물만 석 잔을 비웠다. 그러다 아내가 어렵게 입을 뗐다.

“금식하신다면서요.” “네, 김 선생님 때문에 했습니다. 결혼합시다.”

무슨 용기에선지 갑자기 청혼을 한 것이다. 다시 대화가 끊겼다. ‘호감이 있는데 괜찮다면 한번 사귀어보지 않을래’라고 묻는 게 맞는데 그때는 이 말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다. 식사 후 우리 집으로 같이 갈 것을 제안하자 아내는 묵묵히 내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얼마 뒤 장인어른께 인사를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막무가내였지만 신기하게도 양가 어른은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당시는 졸업 전이라 결혼비용도 넉넉지 않아 내가 쓰던 방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혼수도 화장대 하나가 전부였다.

졸지에 아내는 만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남자와 결혼날짜를 잡았다. 이 역시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한 덩치 하는 내가 금식하며 매달리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고 했다. 연애기간이 짧다 못해 거의 없이 혼인을 올리게 된 아내에게 나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우리는 평생 연애하며 살자’고.

올해로 결혼한 지 34년을 향해간다.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미안한 일 천지다. 아내는 꽃 같은 20대에 자녀 3명을 낳고 살림을 꾸렸다. 연애도 못하고 격식 있게 살지 못했어도 내 곁을 지켜준 아내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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