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살리고 멋 살리고… 쓰레기, 패션으로 다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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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살리고 멋 살리고… 쓰레기, 패션으로 다시 살다

‘페트병 재킷’을 입는다는 자부심

입력 2018-12-29 04:01 수정 2019-01-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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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쌓인 일회용품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돌고 돌아서 어떤 바다생명체의 뱃속에서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과거라면 관심 갖지 않았을 먼 나라 일. 요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만 접속하면 폐비닐을 삼키고 괴로워하는 동물 영상이 널려 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공감의 범위가 지역을 넘어 지구 단위로, 인간을 건너서 동물로 넓어졌다. 눈앞의 생생한 고통에 윤리적 소비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트렌드에 누구보다 민감한 게 패션계. ‘친환경’이라는 소비자 욕구에 발맞춰 패션계도 달라지고 있다. 환경과 동물 보호 등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높은 2030 눈높이에 맞춰 폐기물을 수거해 새 원단이나 소재로 탈바꿈시키는 혁신이 활발하다. 스타일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기술발달 덕에 품질도 뒤처지지 않는다. 여기에 의미까지 부여된 제품에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페트병 재킷’을 입는다는 자부심

올겨울 미국의 아웃도어 회사 파타고니아는 버려진 페트병 35개가 들어간 겨울 재킷을 출시했다. 조각낸 페트병을 녹인 뒤 실을 뽑아 옷을 만든다. 유튜브에 올라온 제품 영상에는 “환경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입는다”는 네티즌 댓글이 달려 있다. 파타고니아는 겨울 제품의 77%에 재활용 소재를 쓴다. 현재까지 14만5000㎏의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미국 브랜드 팀버랜드는 현재까지 7800만개 이상의 페트병을 수거해 제품에 활용했다. 2007년 일부 제품군에 페트병을 활용하기 시작해 2015년부터는 전 제품에 페트병으로 만든 신발 끈이나 인조 모피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이티 지역에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해 아예 새로운 원단 ‘스레드’를 개발했다.

살아있는 거위와 오리의 가슴 털을 뽑는 영상에 놀란 이들은 이탈리아 회사인 써모어에 주목할 만하다. 페트병으로 거위·오리털을 대체할 충전재를 만든다. 나이키와 펜디, 브룩스 브라더스패션 기업들이 진짜 털 대신 써모어 충전재를 쓴다. 다운패딩 한 벌에는 오리나 거위 20~30마리의 가슴털이 들어간다. 써모어 점퍼를 사면 페트병 10개 정도로 그만큼의 고통을 없앨 수 있다.

쓰레기가 영롱한 보석이 되는 마법

미국의 컴퓨터회사 델이 영화배우 니키 리드와 협업해 올 초 출시한 패션 브랜드 바이유위드러브는 폐금속을 재활용한다. 오래된 노트북과 컴퓨터에서 추출한 금으로 반지나 귀걸이 등 장신구를 만든다. 메인보드 6개에서 반지나 귀걸이 한 쌍이 나오는데, 비싼 것은 100만원이 넘는다. 니키 리드는 재활용 소재인데도 고가인 이유에 대해 “휴지통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다른 업계에서는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은 버려진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지난 4월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국내 판매 첫날 5가지 제품이 매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나일론 폐기물에서 재생한 소재인 에코닐로 만든 레이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장식이 포함된 드레스와 셔츠도 선보였다. H&M 관계자는 “폐그물이나 재활용 은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전혀 눈치 못할 만큼 멋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스포츠 의류회사 볼컴은 바다에 버려진 그물에서 뽑아낸 소재로 여성 수영복을 만들어 지난해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볼컴 디자이너인 마리나 함은 최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몰랐던 원단의 한 종류로 수영복을 만드는 것일 뿐”이라며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환경을 위해 나쁜 냄새 같은 불편함을 참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볼컴은 판매 상위 3종의 수영복을 재활용 소재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외에도 새로운 시도는 줄을 잇고 있다. 미국 가방 브랜드 쌤소나이트는 나일론 생산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모아 추출한 ‘마이판 리젠’이란 섬유로 제품을 제작했고, 국내 온라인 의류업체 드림워커는 버려진 패딩과 이불을 수거해 낡은 외피를 뜯고 털을 꺼내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만든 패딩 점퍼로 주목받았다.

착한 소비에 끌리는 요즘 10대들

환경과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경향은 젊은 소비자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편리함에 사용한 일회용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상을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런 영상들이 인식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콧구멍 깊숙이 긴 빨대가 꽂힌 채 괴로워하는 바다거북의 모습은 유튜브에서 3340만 재생수를 기록했다. 게재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상을 보고 집에서 빨대를 쓰지 않는다”는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영국의 미디어기업 미디어컴이 16~19세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 54%가 윤리 문제에 따라 해당 기업의 제품을 사거나 사용을 중단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응답자의 85%는 기업이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71%는 기업에 사회 환원의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조시 크리체프스키 미디어컴 대표는 “기업 뉴스가 온라인에 많이 노출돼 10대가 이전보다 기업 행동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며 “자신이 사려는 제품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이 의식하는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퍼 대신 테디베어 코트’도 윤리적 소비의 영향 탓?

겨울철이면 거리를 메우던 모피 재킷 대신 올해 테디베어 코트가 눈에 띄게 늘어난 현상을 윤리적 소비의 연장선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은 지난 9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곰 인형처럼 북슬북슬한 재질의 테디베어 코트가 올겨울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진짜 퍼가 아니기 때문에 모피 산업의 동물 학대를 싫어하는 분들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예측대로 온라인쇼핑몰 옥션에서 11월 테디베어 코트 등 부드러운 재질의 폴리에스터 소재 재킷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배 이상 껑충 뛰었다. 국내 한 브랜드는 폴리에스터로 제작한 테디베어 코트를 겨울이 오기도 전에 전부 팔아치웠다.

가짜 털이라는 뜻의 ‘페이크 퍼(Fake fur)’ 대신 친환경의 의미를 부여한 ‘에코퍼(Eco fur)’라는 단어가 각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페이크 퍼가 왠지 모를 부정적인 느낌을 줬다면 요즘은 에코퍼라는 이름으로 착한 소비에 방점을 찍는다”며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 세대 입맛에 잘 맞는다”고 지적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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