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공감, 외국인 노동자·탈북민 ‘마음의 국경’ 허물었다

국민일보

포용과 공감, 외국인 노동자·탈북민 ‘마음의 국경’ 허물었다

[연중기획] ‘나 혼자 아닌 우리’ <1부> ④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입력 2019-01-0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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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특구’의 저녁 풍경. 내·외국인들이 구분 없이 거리를 걷고 있다. 안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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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부산 장대현학교에서 제3회 졸업식이 열리고 있는 모습. 장대현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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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저성장 기조가 합쳐지면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는 이질감을 가진 소수자에게 주로 표출된다. 최근엔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 탈북민이 주 타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그들이 입은 상처를 보듬고 한국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 노력하는 손길들이 있다.

‘국경 없는 공동체’ 안산시 다문화 특구

사방에서 외국어가 들려왔다. 어설픈 한글이 적힌 메뉴판을 걸어둔 음식점과 외국인들, 그 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내국인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지난 26일 마주한 이 풍경은 ‘국경 없는 마을’로 유명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마을의 일상이다.

각 나라의 고유 문화가 자리잡다보니 일반 관광객은 물론 많은 내국인이 이곳을 찾는다. 안산시 관계자는 “주말만 되면 가족 단위 내국인이 많이 찾는다”며 “나라별 맛집을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1977년 안산에 반월공업단지와 86년 시화공업단지가 조성되며 도시가 산업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떠났고,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웠다.

이렇게 모여든 외국인은 지난 11월 말 기준 8만4000여명. 안산시 전체 주민 9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특히 원곡동 초지동 일대에 모여든 외국인은 89개국 3만8000여명에 달한다. 안산시는 외국인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밀집한 원곡동 일대를 2009년 ‘다문화특구’로 지정했다.

한국인을 비롯해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국가의 국민처럼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은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 이곳이 ‘국경 없는 공동체’가 된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인 원주민들의 포용심과 행정기관의 지속적인 지원 정책 영향이 컸다.

안산시는 2007년 ‘안산시 거주 외국인 지원조례’를 제정한 뒤 2008년 전국에서 최초로 외국인주민센터를 개관했다. 2012년에는 다문화특구 내에 다문화 경찰센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설치했다. 다문화커뮤니티센터에서는 주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결혼이민 초기 적응부터 자녀 양육, 사회적 자립 역량 강화 등 이주민의 생애 발달주기에 맞춰 법률·행정 지원을 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다. 특구 지정 직후인 2009년 안산시가 시민 5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0% 이상이 외국인 증가로 인한 치안 및 생활환경 악화를 우려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살다보니 주민들의 인식은 바뀌었다. 원곡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남희(49)씨는 “거부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부대끼며 살다보니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근로자를 차별할수록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북청소년들의 안식처 장대현학교

탈북민들은 목숨을 걸고 찾아온 남한 땅에서 차별과 불신에 직면하곤 좌절한다. 하지만 많은 단체들이 진심어린 배려와 관심, 포용의 자세로 탈북민들을 보듬고 있다. 2014년 부산 강서구에 처음 문을 연 장대현학교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 임창호(고신대 교수) 교장은 2007년부터 탈북민을 돕는 교회를 운영하면서 탈북민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임 교장은 31일 “과거 탈북민 학부모와 면담해보니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이 많았다”며 “기존 탈북민 대안학교는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의 탈북민은 자녀를 보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임 교장은 주변의 도움 덕분에 2014년 부산에 장대현학교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장대현’이란 이름은 6·25 이전에 평양에 있던 교회에서 따왔다. 부모가 평북 출신이라는 익명의 독지가가 12억원 상당의 건물을 강의실로 기부하는 등 200여명이 힘을 보탰다. 선생님 충원에는 부산시민들이 나섰다. 전현직 교사, 학원 강사, 회사원, 주부까지 탈북 청소년을 무료로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중고등 과정의 신입생 12명으로 시작한 장대현학교는 개교 4년 만인 올해 2월 세 번째 졸업생(5명)을 배출했다. 현재 학교에는 교장, 교의와 전임 교사 5명, 원어민 교사 3명, 시간제 교사 35명, 행정·사감·조리사·관리를 맡은 교사 등 5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대부분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는 부모가 탈북민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영되지만 장대현학교에는 남한 출신 아이들도 있다. 총 22명의 학생은 북한 출신 7명, 탈북민 부모를 둔 중국 출신 8명, 남한에서 태어난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남한 학생들의 경우 통일에 관심 있는 부모와 학생들이 스스로 입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탈북민들과의 어울림은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았다. 임 교장은 “남북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공동체 생활 및 프로젝트 수업과 같은 협동학습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배우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변화는 ‘공감’을 통해 서서히 일어났다. 임 교장은 “무엇보다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들은 힘들었던 탈북 과정을 떠올리는 북쪽 아이들을 위로하고 북송돼 돌아오지 못한 부모를 그리워하는 친구를 위로해주며 친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남한 학생 한모(18)양은 “함께 공부해보니 말투만 조금 다를 뿐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탈북민인 김모(17)군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배척과 무시를 당했지만 이 학교에서 생활하며 친구를 사귀고,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졸업생들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돼 저마다의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졸업해 현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장은숙씨는 “북한 주민과 같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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