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지호일]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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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지호일]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탈한가

입력 2018-12-3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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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차 맞는 문 정부에서
민주주의 금 가는 소리 들리고 민주주의 침체의 징후 나타나


지금 당신은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은 무탈하게 작동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나도 아직은 “그렇다”고 믿는다. 적어도 우리는 민주주의의 옷을 걸치고 있으니까.

1987년 민주화항쟁의 결과물로 국민이 직접 투표해 대표자를 뽑고, 다양한 간판의 정당이 활동하고, 인터넷에서는 대통령마저 가차 없이 비난의 도마에 올려진다. 2년 전 촛불의 열기로 가득했던 광장은 비선 실세와 함께 침몰하던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건져냈다. 야스차 뭉크 하버드대 교수는 “선거의 여왕을 청와대에서 성공적으로 끌어내린 일은 세계 자유민주주의 옹호자들에게 영감을 줬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때에, 문재인정부 집권 3년차로 들어서는 때에 다시 민주주의를 돌아보게 된다. 촛불 대통령으로서의 신화는 이미 상당부분 걷혔다. 대신 그 자리에서 민주주의에 금 가는 소리가, 궤도에서 이탈하는 징후가 나타난다. 그것도 옛 386세대가 주도하는 청와대와 여당 내부에서부터 위기 신호가 발신되고 있다. 집권 이후에도 민주화 투쟁을 하듯 국정을 운영하는 ‘운동권적 습성’에서 여러 문제가 비롯되고 있다고, 나는 본다.

하버드대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쿠데타나 테러 등이 아니라)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단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을 파고든 결론이다. 저자들은 상대 정당을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관용과 이해’, 법적 권리를 신중히 행사하는 ‘자제’ 이 두 가지를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핵심 규범으로 꼽았다.

헌법적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권위주의적 스트롱맨’과 문재인 대통령 개인을 비교 선상에 올리긴 어렵겠지만, 백악관과 청와대가 보이는 리더십 간에는 유사한 패턴도 발견된다.

한국의 현실을 보자. 모두가 목이 굳어져라 청와대만 쳐다본다. 행정부 각료들은 “받들겠습니다”라며 영혼 없는 복창을 반복하고, 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분소 역할에 충실하려는 기류가 역력하다. 사법부는 어떠한가. 대통령의 인사 설계에 따라 보수에서 진보로 서둘러 개축하던 와중에 굴착기를 몰고 온 검찰의 압박까지 더해져 여전히 먼지가 자욱하다.

독야청청 청와대는 스스로 진리와 정의를 독점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정부의 유전자에 애초 민간인 사찰은 존재하지 않는다”(김의겸 대변인),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조국 민정수석)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이런 인식은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보수 궤멸론’ ‘20년 집권론’ 등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의 여권에 보수야당은 무시·경멸의 대상이고, 투쟁을 통해 쓰러뜨려야 할 적폐나 다름없다. 반대로 야당은 여권을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좌파 세력’쯤으로 여기며 정부가 실패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정치학계 석학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당은 민주주의의 중심적 정치기제”라 했지만, 관용과 자제가 말라버린 토양에서 정상적인 정당 정치란 오지 않는 고도일 뿐이다.

제 기능을 못하는 국회, 여야의 극단적 편 가르기 틈새로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고개를 치켜든다.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포퓰리즘을 조장하는 3가지 요인으로 경제 침체, 소셜 미디어, 민족적·문화적 배타성을 들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한국이야말로 포퓰리즘이 득세할 환경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현 청와대는 집권 초부터 대의제 절차를 건너뛰어 대중과 직접 교통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최근의 문 대통령 지지율 ‘데드크로스’ 상황은 포퓰리즘으로의 유혹을 한층 부추길 수 있다.

청와대는 이런 평가와 전망이 참을 수 없을 터다. “지난 정권보다는 낫지 않냐”는 항변도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달라진 것은 무엇이냐”는 회의적인 질문에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혹여 내면화된 이념성과 조급함이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을 소홀하게 한 것은 아닐까. 2019년 청와대와 여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할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

지호일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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