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벼룩들의 네트워크, 생존과 안전의 그물망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벼룩들의 네트워크, 생존과 안전의 그물망

입력 2019-01-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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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벼룩’이라는 흥미로운 책을 쓴 찰스 핸디는 후기-근대 사회의 조직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회사, 학교는 물론 방송국과 윈저성까지 40년 넘게 두루 조직 사회를 경험한 근거로 분석한 것인즉, 조직의 관계망이 ‘피라미드’형에서 점점 ‘네트워크’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현대 관료제(bureaucracy)는 업무상 권한을 가지는 상위 ‘자리’의 사람이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하향 전달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에 다분히 권위 위계가 뚜렷했다. 그러다 보니 업무상의 권한을 넘어선 ‘갑질’이 비일비재해도 부당함을 참아야 하는 것은 언제나 ‘을’이었다.

그런데 핸디의 전망에 의하면, 후기-근대 사회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마치 비행기 항공노선도와 같은 수평적 계약 사회로 변화할 것이란다. 결국 시장성을 가진 콘텐츠나 기술을 가진 개인은 벼룩들처럼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별로 이합집산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인생을 핸디는 “포트폴리오 인생”이라고 불렀다. 이제 자리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조직 위계도 비효율적이다. 네트워크형 조직망에서는 고도로 세분화 된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을 이루어야 일이 진행되기에, 언어도 더 이상 명령어가 아닌 계약과 협상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숫자가 압도적으로 줄어들겠지만 관료제적 거대 조직인 ‘코끼리’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앞으로의 과제는 소수의 거대조직과 재능을 가진 개인들 사이의 필요충분조건을 잘 채워가며 미래 사회가 건설되어야 하는 것이란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미 ‘코끼리와 벼룩들’의 공존이 관찰되고 있는 후기-근대형 사회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성을 상품가치로 하여 평등하고 정당하게 협상의 언어를 구사할 힘을 가지고 있는 ‘벼룩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프리랜서’와 ‘비정규직’이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은데 두 단어가 주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듯이, 자유롭게 자신이 일할 곳을 결정하고 노동의 안정성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권한을 가질 만큼 ‘프리~한 전문가’가 많지 않다. 더구나 더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에 배치되는 ‘벼룩들’은 대개가 20대 어린 인력들이다. 최근 우리를 아프게 했던 산업재해들이 다 그러하지 않았나.

사실 돌이켜보면 조직 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되어 생존을 위협받았던 사람들은 어리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역사상 어느 사회에서도 이들이 우선적으로 배려받고 안전한 삶으로 재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도적 당연’으로 여긴 적은 없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매일 이렇게 주의 기도를 반복하는 신앙인들조차 능력 위주의 사회를 살면서 어느덧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당연’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하지만 ‘적자생존’은 짐승의 법칙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달리’ 지으셨다. ‘살려내는’ 구원의 능력을 가진 존재로 말이다. 창세기 1장에서 만물을 지으시며 하나님께서 오직 사람에게만 주신 “다스리라”는 명령을, 나는 종종 “살려내라”라는 구원 명령으로 번역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처럼 다스리라는 말인데, 그것이 어찌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과 같을까.

사회가 못한다면 일단 교회라도 시작하자. 작은 교회들은 벼룩들의 생명 연대로, 외로운 이 사회에서 하나의 확대가족이 되어주면 좋겠다. 따끈따끈한 시루떡처럼 뒤로 넘어져도 폭신하게 받혀주고, 넘어진 김에 요기도 하고 새 힘을 얻는 그런 공간이요 관계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끼리’ 같이 거대한 대형교회라고 해도 그 조직의 법칙을 ‘하나님 나라 통치 질서’로 삼는다면, 충분히 권위 나눔과 소유 나눔의 센터요 허브가 될 수 있다. 딱 죽겠는 세상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벼룩들이 뛰어 들어오면 사는 코끼리 등처럼 말이다. 올 한 해, 한국교회가 그렇게 생명의 네트워크를 이루기를 소망한다. 주께서 앞서 보이신 선한 길이다.

백소영 (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