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진우] 미꾸라지와 망둥이

국민일보

[여의도포럼-이진우] 미꾸라지와 망둥이

입력 2019-01-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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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신재민 논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소통 부재
문재인정부가 이전보다 나은 정권으로 남으려면 비판을 포용하고
스스로 정화해 가는 소통의 정치문화 발전시켜야


때아닌 미꾸라지와 망둥이가 논란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강한 도덕성을 내세워 적폐청산을 추진하던 문재인정부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민간사찰 폭로와 전직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내부고발로 휘청거리고 있다.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속담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형국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흐린다”는 말로 청와대 문제를 폭로한 김 전 감찰반원을 개인 비위로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로 만들고,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신재민 전 사무관을 망둥이로 만들기 위해선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이 소환된다.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문재인정부의 대응은 한마디로 신경질적이고, 정부의 흠집을 파고드는 보수 야당의 공격은 한마디로 호들갑스럽다. 마키아벨리가 적나라하게 밝힌 것처럼 정치적 권력이란 본래 도덕과 분리되기는 하지만,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을 상실하면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 마련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권력에 눈이 멀어 아무 생각 없이 헛말을 쏟아내는 인간들 때문에 상처를 입은 미꾸라지와 망둥이의 처지다. 혼탁한 말싸움 때문에 유익한 생물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하고, 논란의 진짜 핵심을 놓칠까 두렵다.

미꾸라지와 망둥이는 사실 건강한 생태계를 가늠하는 유익한 물고기다. 논, 연못, 도랑처럼 물이 느리게 흐르거나 고여 있는 곳에 사는 미꾸라지는 먹이를 찾기 위해 바닥을 파헤칠 때 흙탕물이 일기 때문에 ‘물을 흐린다’는 악명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미꾸라지는 모기 유충을 먹어 위생 해충 수를 줄이는 등 물을 맑게 하는 이로운 생물이다.

바닥이 진흙이나 모래로 이루어진 강 하구나 갯벌에서 사는 망둥이도 마찬가지다. 망둥이가 많이 뛰면 사실 갯벌이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좋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깜도 안 되면서 몸값이나 올려보자고 남이 한다고 덩달아 나서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니 망둥이가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꾸라지와 망둥이가 생태계의 건강성을 알려주는 지표생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더러운 흙탕물처럼 보이지만 미꾸라지와 망둥이가 살 수 있다는 것은 환경이 건강하다는 징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두 생물이 호출되는 혼탁한 정국을 바라보면 문제의 핵심이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문재인정부는 출발부터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도덕적’ 정부를 자처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청와대의 대응이 이를 잘 말해준다. 정치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역사는 현실을 무시한 도덕적 이상주의가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수많은 사례로 가득 차 있다.

자신만이 도덕적이라는 독선적 오만과 현실을 빨리 바꿔야 한다는 조급증이 결합해 미꾸라지와 망둥이를 불러낸 것이다. 이 정권이 조그만 비판조차 수용하거나 포용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이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 혁명의 물결은 동시에 국민의 도덕 기준을 높였다는 점이다. 민간사찰, 환경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및 비리가 있는 측근 감싸기 등의 의혹에 대해 모든 것이 정상적인 동향 파악과 합법적인 정보 수집이었다는 청와대 주장은 많은 사람의 상식에는 그저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그 진위야 수사를 통해 밝혀지리라 기대하지만, 이 정부 역시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은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 정부는 다를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확산되면 문재인정부를 띄운 민심의 물줄기는 거꾸로 그 정부를 뒤집을 수도 있다.

셋째, 미꾸라지와 망둥이 논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소통의 부재다. 이 정부는 정치적 적을 적폐로 타자화해 제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 적폐는 투명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구조적 폐단이다.

그런데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내부고발자를 하찮은 하급 공무원으로 치부하는 태도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느껴지고, 그에 대한 인격살인도 서슴지 않는 막말에서는 천박한 인성이 드러난다.

문제 제기가 부담스럽다고 여겨지면 어김없이 검찰 고발로 대응하는 것도 과거 정부에서 많이 보았던 적폐다. 비판의 입을 틀어막고 소통의 통로를 봉쇄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뿐이다. 이 정부가 정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정권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비판을 포용하고 스스로 정화해가는 소통의 정치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더 많은 미꾸라지가 나오고, 더 많은 망둥이가 뛰어야 하는 이유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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