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이해 없이 드리는 기도는 왜 문제일까

국민일보

‘삼위일체’ 이해 없이 드리는 기도는 왜 문제일까

삼위일체/리처드 보컴·마이클 리브스 외 지음/브랜든 크로·칼 트루먼 편집/신호섭 옮김/이레서원

입력 2019-01-11 00:04 수정 2019-01-1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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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있는 토마소 디 지오반니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신비는 오랫동안 인간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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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는 독특함과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으로 꼽힌다. 하나님이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세 위격을 가졌고, 각각 존재하지만 동시에 하나라는 가르침은 알듯 모를 듯하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오해도 만만찮다.

역사적으로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인정받고,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정식 추인되기까지 삼위일체 교리를 둘러싼 논박이 적잖았다. 여러 이단 중 상당수는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설명이 쉽지 않아 목회자들도 설교하기를 꺼리다 보니 교회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제대로 된 설교를 듣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낯선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읽기나 기도, 예배와 같은 신앙생활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도 도통 알기 어렵다. ‘신약신학·실천신학적 연구’라는 부제가 달린 ‘삼위일체’(이레서원)의 발간은 그래서 유난히 반갑다.

리처드 보컴 영국 케임브리지대 리들리홀 명예교수, 마이클 리브스 영국 유니온신학대학원 신학부 교수 등 쟁쟁한 학자 13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먼저 신약성경을 살피며 삼위일체 교리가 직접 언급되지 않았을 뿐 얼마나 탄탄하게 성경에 기초한 것인지 설명한다. 이어 삼위일체 교리가 어떻게 목회 현장과 연결되는지 고찰한다. 한마디로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에 입각한 신약의 주해는 흥미로울 뿐 아니라 또 다른 성경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브라이언 S 로즈너 호주 리들리대 학장은 바울서신에 드러나는 삼위일체적 신학의 특징을 나열한다. 그중 기도에 대한 삼위일체적인 설명을 에베소서 2장, 갈라디아서 4장, 로마서 8장을 통해 살펴본다. 연약한 우리는 기도할 바를 모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 도우시기에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삼위일체 교리가 그저 사변적이고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단박에 보여준다.

이들은 구약에는 삼위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통념과 달리 명확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삼위일체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는 흔적에도 주목한다. 벤저민 L 글래드 미국 리폼드신학대학원 신약학 조교수는 다니엘 2장과 요한계시록 22장, 다니엘 7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을 비교·분석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제시가 다니엘서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어지는 2부에서 진행되는 논의는 한층 더 흥미진진하다. 삼위일체와 신비 기도 계시 예배 설교의 관련성을 따져보면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균형 잡힌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한지를 부각한다. 삼위일체와 기도에 관해 쓴 칼 R 트루먼 미국 그로브시티대 신학 교수의 이 같은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삼위일체는 추상적 교리가 아니며 기독교 신학의 부록에 속하는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 교리로부터 시작해 기독교 실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총망라한다”고 선언한다. 이어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그분의 아들로 입양된 자라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삼위일체적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따라서 신자의 모든 것과 신자가 행하는 모든 것은 어떤 면에서 삼위일체적 용어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고 밝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없이 드리는 기도가 왜 문제인지, 이 시대 교회들이 예배자에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왜 잘못됐는지, 강림절 고난주간 부활절 오순절 등 교회력을 살펴보고 목회에 적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삼위일체적인 설교가 왜 꼭 필요한지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가독성이다. 4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썼다는 조건은 통상 독자의 독서를 방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 점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결코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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