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라동철] 균열 일터가 심화시킨 양극화와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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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라동철] 균열 일터가 심화시킨 양극화와 불평등

입력 2019-01-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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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후 간접고용 확산돼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벌리고 하청업체 노동자 안전 위협
고용 안정성 흔들고 이익은 챙기면서
부담은 사회에 떠넘기는 균열 일터 막아야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후 양극화와 불평등이 확대돼 왔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라는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김대중정부가 1998년 7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시행하는 등 간접고용의 문을 활짝 열어 준 것이 방아쇠를 당겼다.

근로자파견은 파견업체 사업주와 고용 관계에 있는 노동자가 다른 기업에 파견돼 그 기업의 지휘·감독을 받아 일하는 고용 형태다. ‘보호’란 이름이 붙었고 파견 가능 업종과 파견 기간 등을 제한했지만 실상은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파견근로를 허용한 법이었다. 외환위기 전에는 직접고용이 대부분이었으나 이후엔 파견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이 기업 구조조정, 경영 효율화란 미명 하에 확산됐다. 대기업 사업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지만 그들이 모두 그 회사 직원들은 아니다. 사내하청·도급·협력·위탁 업체 등 다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상당수 섞여 있다. 청소, 경비, 수송 등 지원 업무는 물론 수익이 발생하는 생산·유통 등 핵심 업무까지도 아웃소싱(외주화)이 이뤄졌다.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섞여 있고 누가 고용주이고 업무 지시자인지 헷갈리는 그렇게 산산조각이 난 일터를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은 ‘균열 일터(The Fissured Workplace)’라고 명명했다.

균열 일터는 원청 기업에 유리하다. 하청업체들의 일감 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헐값’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다. 일터를 조각내 비용은 줄이면서 고용주로서의 법적 책임은 회피하는 ‘꿩 먹고 알 먹기’다. 피해는 하청업체와 그 업체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불리한 조건의 계약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돼 하청업체 직원들은 저임금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원청 기업들이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빈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55%였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 2015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 비율)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의 4배나 됐다.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지난해 8~10월 3명의 노동자가 안전사고로 숨졌는데 모두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화성 철강공장 자동문 설치 작업 중 숨진 20대 노동자, 지난 8일 김천 화학물질 제조업체에서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도 하청 노동자였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법률이 지난 8일 공포돼 일부 유해·위험 작업의 사내 도급이 금지되지만 균열 일터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균열 일터는 다른 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속도가 빠르고, 임금 양극화가 심하다. 일본과 독일은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이 대기업의 80~90% 수준이다. 비용 절감을 노린 간접고용이 확산될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 그 나라 대기업들이 선량해서 그런 건 아니다. 각종 정책과 제도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막을 안전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일 게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원칙적으로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을 주도록 노동 법규를 개정했다. 대기업은 내년, 중소기업은 2021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간접고용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많은 사업장에서 이미 고착화돼 있어 단기간에 해소하는 건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균열 일터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정부가 균열 일터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좋은 일자리를 확충하겠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관련 정책을 마련해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한다.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더 엄격히 제한하고 불법 파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가 후려치기나 부당한 비용 전가 등 원청 기업들의 갑질을 차단하려는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또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8월 CJ대한통운 대덕 물류센터에서 하청업체 소속 20대 아르바이트생이 감전돼 사망한 사고와 관련, 7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고 더욱이 시설 관리 책임이 있는 CJ대한통운에게 부과된 몫은 650만원에 그쳤다.

간접고용은 해당 원청 기업에는 이익이지만 고용 불안정을 부추기고 결국 복지 예산 지출을 늘리는 요인이 돼 사회 전체로 보면 손해다. 기업의 경영 활동은 보장돼야 하지만 사회에 부담을 떠넘기는 행태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 정부가 균열 일터의 부작용을 해결할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도 일터를 조각 내 손쉽게 이윤을 늘리는 안이한 경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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