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블랙 영화’만 세 편 봤다

국민일보

[염성덕 칼럼] ‘블랙 영화’만 세 편 봤다

입력 2019-01-1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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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감독·주연에 부처·여당이 조연인 의혹투성이의
블랙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은 당연한 수순
의혹 전모 밝히는 ‘화이트 영화’ 만들려면
특검이 제작하고 김태우 신재민이 주연 맡아야


문재인 정권이 5·6급 전·현직 공무원을 비난하거나 두둔하는 모습이 참 가관이다. 이 정권은 많은 비리 의혹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개인 일탈로 몰았다. 이성적 접근보다는 감정을 앞세워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장황한 설명이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고, 해명이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평등 공정 정의’를 강조하지만 공허한 주장이다. 최근 이 정권에서 연출된 ‘블랙 영화’만 세 편을 봤다. 청와대가 감독과 주연을 자처하고, 기획재정부 환경부 육군 더불어민주당이 조연을 맡은 듯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은 해임을 앞두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 11일 징계위를 열어 그의 해임을 의결했고, 문무일 검찰총장이 보름 안에 해임 처분을 내리면 징계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태우는 민간인 사찰, 특감반의 광범위한 정보 수집, 특정 업체 지원설,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330개 공공기관장과 감사의 정치 성향 조사,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검찰 간부 비위 첩보 누설 등 많은 의혹을 제기했다. 폭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청와대는 김태우를 ‘미꾸라지’라고 매도했고, 정보 수집이지 사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해 꼬리를 자르고 검찰에 수사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미꾸라지 반박 카드를 꺼낸 모양이다. 허위로 해명하고 정정한 사례도 여럿 있다. 김태우 사건은 투 트랙으로 접근하면 그만이다. 개인 비위가 확인되면 처벌하고, 폭로의 진위를 철저히 가리면 된다. 국민은 후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어물쩍 넘어가면 거센 역풍을 맞는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청와대의 적자 국채 발행 압력과 KT&G 사장 교체 시도를 폭로했다. 국채 발행 업무를 맡았던 신재민은 청와대의 외압 실체와 정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적자 국채 발행과 KT&G 사장 교체가 미수에 그쳤지만 그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국정 농단이 아닐 수 없다. 세금이 더 걷히면 나랏빚을 먼저 갚는 게 순리다. 국익에 반하는 정책을 지시하면 안 된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애매한 변명만 늘어놓지 말고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여권은 신재민을 ‘망둥이’로 몰아붙이며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을 철회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해야 한다.

청와대 정모 행정관과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의 회동 배경도 석연치 않다. 정 행정관은 김 총장을 국방부 인근 카페로 불러내 만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는 군 사정에 밝지 않은 정 행정관이 김 총장을 만나 인사 선발 시스템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기본 지식도 없는 문외한에게 업무를 맡겼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청와대 위세가 얼마나 등등했으면 5급 행정관이 김 총장을 호출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행정관이 참모총장을 못 만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육군은 행정관이 면담 신청을 했고, 총장이 행정관을 불러낸 것이라는 자료를 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다.

김태우와 신재민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지만 성과를 기대하는 국민이 있을까. 검찰은 ‘죽은 권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었다. 처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인사의 지인들까지 압박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독립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뺄지는 의문이다. 여권의 비리를 캐비닛에 쟁여 놓고 권력의 힘이 빠질 때만 기다리는지 모른다.

숱한 의혹이 불거지자 국민의 시선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장으로 쏠렸다. 문 대통령은 “그(김태우)가 제기한 문제는 자신이 한 행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는 것” “자신(신재민)이 보는 좁은 세계 속의 일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블랙 영화의 엔딩 멘트를 날리면서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에서 과거처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그는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을 권력기관으로 지칭했다. 이 정권 들어 검찰 등의 무리한 수사로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끊는 인사들까지 생긴 것을 도외시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 범주에 청와대를 넣지는 않았다. 청와대가 최고 권력기관임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청와대에서 불거진 의혹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김태우나 신재민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정권의 주춧돌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청와대가 연출한 블랙 영화는 흥행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간과했다. 관객의 높은 눈높이를 깡그리 무시했고 관객의 의혹을 증폭시켰다.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는커녕 불쾌함을 안겼다. 관객은 특별검사가 제작과 감독을 맡고, 김태우 신재민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화이트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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