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세습’의 통로로 전락한 교육…더 견고해진 ‘스카이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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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세습’의 통로로 전락한 교육…더 견고해진 ‘스카이 캐슬’

[연중기획] ‘나 혼자 아닌 우리’ <2부> ② 흙수저 울리는 ‘SKY 캐슬’

입력 2019-01-2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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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부모의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으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대접을 받으며 직장을 다닐 확률이 높다. ‘못 가진 자들’의 피해의식이 아니라 국책연구기관 연구로 확인된 ‘팩트’다.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는 우연적 요소가 후천적 노력보다 중요해지는 현실은 ‘꼬리칸’의 분노를 키운다. 무능한 교육 당국과 공교육은 이런 분노를 혐오로 굳어지게 하고 화해를 불가능하게 한다.

반칙 난무하는 교육·취업 현장

일부 교육자의 비뚤어진 자녀 사랑이 공교육의 신뢰를 허물었다. 지난해 서울 숙명여고 사태는 치명적이었다. 학교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정기고사 문제를 쌍둥이 딸에게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구속됐다. 두 딸이 나란히 전교 1등을 차지하면서 의혹이 증폭됐는데도 학교는 덮기에만 급급해 불신을 증폭시켰다. 숙명여고처럼 시험지 유출이나 학생부 조작 사건이 적발된 학교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26곳이다. 문제 유출이나 학생부 조작이 은밀하게 이뤄져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에 ‘이 학교들뿐이겠는가’란 의심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성년 자녀를 논문에 끼워넣는 교수들의 뻔뻔한 행태도 큰 충격을 줬다. 실험 기자재를 정리하거나 엑셀 작업 혹은 단순 번역을 도와줬을 뿐인데 논문 저자로 자녀 이름을 넣고는 ‘저자로 손색없다’고 했다. 논문 저자 경력은 대입에서 좋은 스펙이 될 수 있다. 교수 자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에서 우위에 섰다. 교육부 실태 조사에서 이런 교수가 86명이나 적발됐는데도 대학 당국은 ‘모르쇠’다. 자녀뿐 아니라 지인의 자녀에게 은밀하게 혜택을 주는 행위는 교수사회의 양심에 기대는 것 외에 뾰족한 근절 방법이 없는 상태다.

대중의 분노를 야기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법조인으로 향하는 유일 창구가 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면접에서는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냐’는 질문이 오갔다. 로스쿨 입시 불공정 논란 이후 자기소개서 등에 집안 배경을 쓰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그들만의 리그’란 의심을 해소하긴 역부족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고용 세습과 금융·공공기관에서 드러난 취업 비리는 후천적 능력보다 집안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잘 태어나야 대학도 직장도 잘 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교육격차 실태 종합분석’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학 경험과 노동시장 지위에 미치는 영향’에는 교육을 매개로 계층이 대물림되는 상황이 수치로 드러나 있다(그래픽 참조). 2008년부터 2014년 사이에 대학을 졸업한 7만9891명을 분석한 내용이다.

부모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그룹에서는 자녀들의 임금 격차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11년의 경우 부모의 월 소득이 100만~200만원대인 대졸자 첫 일자리 임금은 월 평균 169만8600원이었는데 300만~400만원대는 182만300원으로 12만원가량 차이가 났다. 반면 부모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월 500만원 이상)에서는 격차가 컸다. 월 소득 500만~700만원대 부모의 자녀들은 191만5800원을 받지만 1000만원 이상에선 226만1200원으로 격차가 34만원이었다. 보고서는 “부모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자녀 임금 수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양태를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부모 소득 수준에 따라 진학하는 대학 유형도 달랐다. 부모 소득이 200만원 이하인 자녀들은 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7~8% 수준인데 500만원 이상 자녀들은 25~30%가 ‘인(in) 서울’을 하고 있었다.

부모 소득과 대학 유형이란 두 변수를 조합하면 흙수저 청년들의 분노가 이해된다. 부모 소득 수준이 높고 서울 4년제를 나온 인원은 2008~2014년 기간에 첫 일자리 임금이 235만7000원부터 243만8000원까지 꾸준한 흐름을 보인다. 반면 부모 소득 수준이 낮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청년의 노동 환경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첫 일자리 임금이 2011년 208만7000원에서 매년 하락해 2014년에는 188만3000원까지 떨어졌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자녀가 비슷한 대학 간판을 따더라도 졸업해 사회에 나갈 때는 격차가 발생하며 점점 격차가 벌어진다는 얘기다. 2011년에는 양 집단의 격차가 35만1000원 수준이었는데 2014년에는 54만원으로 벌어졌다.

‘SKY 캐슬’ 종영만 기다리는 교육 당국

‘공정’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은 2017~2018년 대입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서 폭발했다. 교육 당국과 교육 전문가들이 제시한 미래 교육 청사진은 대중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교육계는 5지선다형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량평가에서 교사나 교수의 주관이 개입하는 정성평가로 패러다임 전환을 진행해 왔다.

일제고사의 끝판왕격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대입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교사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교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했다. 미래형 인재를 키우려면 5지선다형의 지배를 끝내야 한다는 교육 전문가들과 교육 당국의 합의가 있었다. 최근 10년 입시에서 수능 위주인 정시가 줄고 학생부 위주 전형이 급격히 증가했다.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일방적이고 급박하게 진행된 개혁 작업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그러다 문재인정부가 수능 절대평가를 들고 나오자 폭발해버렸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사례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교사 집단을 믿지 못하겠다는 성토도 이어졌다. 갑이 된 교사가 여학생을 성추행·희롱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공부 잘하는 학생의 학생부는 성의 있게 써주고 나머지 학생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교사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문재인정부로 비난이 집중됐다. 화들짝 놀라 ‘정시 30% 룰’(모든 대학이 정시 모집으로 30% 이상 신입생을 선발)이란 어정쩡한 결론으로 서둘러 봉합했다. 그러고는 더 이상 대입을 손대지 않겠다고 발을 뺐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 공약들의 좌초를 학사비리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자 그를 지지했던 진보 성향 교육 단체들은 ‘철학 부재’와 ‘줏대 없음’을 탓했다. 현재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교육 당국은 불법 사교육을 단속하는 시늉을 하며 드라마 ‘SKY 캐슬’ 종영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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