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속죄] 파국 아닌 부활 ‘속죄’

국민일보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속죄] 파국 아닌 부활 ‘속죄’

입력 2019-02-0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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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사진작가 김수안의 ‘고난과 부활에의 묵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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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SKY캐슬’등장인물 중 예서의 입시 코디 김주영이 한서진과 강준상,윤 여사와 함께 앉아 있다. jtbc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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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집단 안에서 부모들은 자식을 어떻게든 성공시키려고 한다. 의대 교수의 아내 한서진(염정아)과 진진희(오나라), 법대 교수의 아내 노승혜(윤세아)는 각자의 방식과 신념에 따라 아이들의 사교육에 집중한다. 시청률 20%를 훌쩍 뛰어넘어 역대 비지상파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 ‘SKY캐슬’의 줄거리이다.

최근 한국 사회가 상류층 부모들의 처절한 욕망과 민낯을 그린 이 드라마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사교육 광풍과 맞물린 인간의 욕망을 실감나게 그렸다는 것 말고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부(富)가 대물림 되고 금수저론이 공고화되는 이때, 대한민국 상위 0.1%만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은 99.9%인 대다수 사람들의 호기심을 극대화했다. 또 절대선과 절대악이 없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등장인물의 ‘속죄’를 통한 ‘인간성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은 있는가?’란 질문을 던져준다.

속죄를 통한 인간성 회복

속죄야말로 인간의 삶 속에서 얽히고설킨 모든 혼란의 해명과 해결이 갖는, 가장 심오한 의미를 짚어주는 단어가 아닐까. 인간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의 아픔을 통해 깨어진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 속에서 회복을 경험한다. 괴로워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SKY캐슬’ 19회에서 딸의 서울대 의대 진학을 위해 진실을 숨기던 한서진이 코디 김주영의 살인교사와 시험문제 유출의 악행을 폭로했다. 가난한 과거를 뒤로하고 수많은 거짓말로 신분을 세탁하며 오로지 자식성공에 매달려온 한서진은 “엄마 나 이러다 죽을 거 같아”라고 절규하는 딸 예서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권력에 눈먼 강준상은 친딸인 줄 몰랐던 혜나의 죽음 이후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자만심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예서는 좋아하는 우주가 살인 용의자로 수감되자 괴로워한다. 사실을 밝히면 꿈꾸던 서울의대 진학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혜나를 죽인 용의자로 누명을 쓴 우주는 감옥에서 풀려난다. 유출된 시험지로 공부를 한 예서는 자퇴하고 “내 실력으로 대학에 가겠다”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강준상은 가정에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한서진과 함께 우주를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아파 보인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상처 때문이다. 이들의 상처는 곧 삶에 대한 질문이다. 입시 코디로 위장하고 있지만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며 부모의 욕심이 아이를 망치는 것을 보여주는 김주영의 복수심은 인간의 죄성을 생각하게 한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복수심은 미움의 정서로 우리에게 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똑같은 미움으로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라고 말했다. 복수심은 인간의 마음을 모두 얼려 버리는 지독한 냉기이다. 미움의 정서가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울 때 마음은 일순간에 냉각되고 그 자리에 잔혹한 복수심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실 ‘SKY캐슬’ 등장인물들은 모두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한서진과 강준상은 자기애 성격장애, 김주영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차민혁은 강박성 인격장애의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남의 시선을 중시하고 자녀들을 자신의 성공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서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혜나는 생존하기 위해 어른들과 기성세대를 향한 분노와 복수심이 가득했다. 이런 심리적 특성들이 인간의 마음을 죄성으로 얼어붙게 만든다.

빙점이 융점 되는 순간

‘빙점’은 액체가 고체로 결정되는 온도이다. 인간의 마음도 얼음처럼 차갑게 응결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복수심이 영혼을 가득 채울 때이다. 복수심 이면엔 더 심각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 본능이 존재한다. 혜나와 김주영의 복수심이 그랬을까.

반면 액체가 고체로 결정되는 온도를 말하는 빙점은 동시에 융점(녹는점)이 될 수도 있다. 물이 0도에서 냉각돼 얼음이 되듯, 얼음도 0도에 풀려서 물이 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마음에도 적용된다.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은 속죄를 통해 녹아내릴 수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존재의 아픔을 통해 깨어지는 인간의 속성을 확인시켜 줬다. 혜나의 죽음, 예서의 심리적 문제, 우주의 억울한 누명이란 상처와 아픔은 ‘빙점’을 ‘융점’으로 만들었다. 파국이 아니라 ‘부활’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아름다움은 신비로울 뿐 아니라 끔찍하기도 하지. 거기서는 신과 악마가 싸움을 벌이고 그 싸움터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야”라고 말한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것을 통해서 미(美)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치열한 투쟁을 한다는 것이다. 악마와 신의 격투장이 바로 우리 마음속이란 것. 미를 추구하는 사람 안에는 이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아버지를 죽인 누명을 쓰고 형무소에 갇힌 큰아들 미챠 카라마조프는 이렇게 말한다. “알료사.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을 발견했단다.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부활했어! 이 사람은 전에도 항상 내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악천후를 보내주지 않으셨더라면 내 안에 이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거야.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완전히 다른 건데… 내 안에서 부활한 그 인간이 다시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걱정이고 두려움이야.”

죄 많은 인생이 파국이 아니라 부활이 되려면 진실하고 처절한 속죄가 선행돼야 한다.

▒ 속죄에 하나 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 죄과에 대한 ‘속죄’


‘속죄’의 사전적 의미는 죄나 속박에 대해 값을 치르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신 것을 말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일서 4:10)

미국의 신학자 마르바 던은 책 ‘언어의 영성’에서 속죄에 대한 의견들이 시대에 따라 달랐다며 속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회 역사를 쭉 살펴보면 속죄에 대해 성경이 설명하고 있는 복합적 묘사들 가운데 특별히 조명을 받는 측면이 역사의 과정마다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세 가지 이미지가 강조됐는데 악의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는 대리인으로서의 예수, 경건한 삶을 위한 모델 혹은 도덕적 영향력으로서의 예수가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하셨다는 데 있다. 이에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단순한 희생이나 순교가 아니라 인류의 죄과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 아무 죄도 없이 돌아가셨다란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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