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자식보다… 돈보다 좋은 보약 같은 친구

국민일보

[100세 시대 ‘나이 수업’] 자식보다… 돈보다 좋은 보약 같은 친구

입력 2019-02-0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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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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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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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에는 매일같이 셋이 붙어 다녔다. 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란히 앉았던 짝꿍, 또 다른 둘은 대학 1학년 때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였다. 양쪽에 걸쳐있던 내가 다리를 놓아 셋이 만나게 되면서 이름하여 삼총사가 탄생했다.

각자 직장에 다니면서도 저녁이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무언가를 같이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주말이면 1박 2일로, 여름이면 휴가 날짜를 맞춰 바다로 산으로 여행을 다녔다. 생김새가 다른 만큼 성격도 식성도 직업도 취향도 달랐지만, 아마도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부딪힘 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서른이 넘어 차례로 결혼을 했고 그중 한 친구는 일본으로 가 일본인 남편과 살게 됐다. 일하랴 살림하랴 아이 낳아 기르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데다가 한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셋이서 만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긴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다 자라 제 앞가림을 하게 되자 모두 한숨 돌리면서 이제 머지않아 우리도 셋이 뭉쳐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하고 보니, 머리는 희끗희끗 나이 육십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 친구가 큰 병에 걸렸고 모두가 애를 쓰며 돌보고 간절히 기도했건만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지난해 가을 훌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달려올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전화로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던 일본에 사는 친구는 결국 장례식이 끝난 후에 귀국했고, 내가 안내해서 간 높은 언덕 야외 봉안당 앞에서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가을바람인데도 바람은 왜 그리 차가운지, 하늘은 또 왜 그리 파랗고 높은지. 하지만 눈물 속에서도 셋이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우리는 웃었고 젊은 시절 엉뚱한 짓을 기억해내고는 또 웃었다. 20대와 30대에 늘 함께했던 친구, 그 고마움이 뒤늦게 가슴을 채웠고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친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뿐이라는 아픈 깨달음에 우리는 또다시 울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무료인터넷전화로 일본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한다. 남편보다도 아이들보다도 먼저 만나 알고 지낸 40년 오랜 벗 세 사람 중 한 명을 떠나보내고 둘만 남고 보니, 어르신들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 같은 친구’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어르신들 애창가요의 제목은 ‘보약 같은 친구’이다.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 (잠 27:17, 새번역)

친구와의 행복한 동행을 위하여

하나,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위로, 격려를 받으면서 안정을 얻고 싶어 하지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팍팍한 현실은 가족 사이에서마저 이런 바람을 채우기 어렵게 만든다. 가족의 정서적인 기능을 친구가 담당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걱정과 즐거움을 나눌 친구의 소중함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둘, 길이 멀면 말(馬)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간직해야 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데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붙잡고 있을 일은 아니다. 오십 이후는 살림살이도 늘리지 않고 정리해야 할 시기인데,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시간 보내기도 부족한데, 일방적이거나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혹은 허울만 남아있는 관계라면 포용력을 발휘하기에 앞서 맺고 끊음이 필요하다.

셋,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교제의 범위나 모임의 개수보다는 서로를 깊이 받아들여 뭉근하게 숙성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나이 듦의 지혜이다. 비록 자주 만나지 못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주고받지는 못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면 말 그대로 시공을 초월한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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