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문록] 사람과 개의 진짜 차이

국민일보

[반려견문록] 사람과 개의 진짜 차이

입력 2019-02-09 04:00

기사사진

사람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반려견의 사료를 탐내지 않는데, 반려견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늘 사람이 먹는 것을 탐낸다. 그게 바로 사람과 개의 차이라고 누나는 내게 말하곤 했다. 반려견인 나로서도 인정.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정도 차이쯤은 있어야 사람과 반려견이 애초에 같은 종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과 반려견의 차이는 다른 데 있다. 사람의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 해도 개들은 개들끼리, 독수리들은 독수리들끼리, 즉 같은 종끼리는 모두 같은 말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처음 만난 서울의 개와 저 멀리 안데스의 개는 단박에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동물들은 다른 종들끼리도 웬만큼 말이 통한다. 개구리와 물소도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을 하고 공생관계를 맺는다. 오직 사람만이 국경을 나누고 언어를 나누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동물들의 말과는 달리 사람의 말은 사람 그 자신의 본능이나 본질과도 상관없고, 또 불필요하게 꾸미고 만든 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사람과 동물 간에는 높은 언어장벽이 생겼다.

내가 사람의 말을 익히기 시작한 건 아무리 말해도 누나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였다. 누나가 나를 나무랄 때 내가 여러 번 코를 핥았더니, 누나는 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하품을 해서 내 뜻을 전달했다. “알았어. 진정하자고. 그렇게 자꾸 큰소리를 내면 불안해진단 말이야.” 누나는 역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나는 와중에 내가 태평하게 졸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살이 되면서 나는 차라리 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게 빠르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과 함께 살려면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집 지키는 개나 양 치는 개처럼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사람의 언어를 배우고 익혔다. 그렇다고 굳이 아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내가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걸 알면 요구사항이 많아질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누나가 전처럼 내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누나가 개들의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에 대해 알게 된 건 고작 몇 년 전이다. 하품하기, 코 핥기, 귀 젖히기, 꼬리 흔들기, 등 돌리기, 쳐다보기와 같은 몸짓언어는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기본언어지만, 누나가 그걸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생으로 치면 아주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나 역시 단번에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누나의 말을 어지간히 이해하기까지는 5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누나가 내 말을 삼십 분의 일쯤 이해하는 데는 9년, 아니 12년이 더 걸렸다.

그게 바로 사람과 개의 차이다. 개가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안색과 표정과 목소리 톤과 호흡과 행동과 분위기를 두루 살피기 때문이다. 사람이 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말만 하기 때문이다. 1만5000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사람의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후 대대로 이어받은 인내심이 없었다면 개들은 사람과 함께 살기 어려웠을 거다. 그 어려운 일을 올해도 묵묵히 해나가려는 반려견들이 사람의 먹을 것을 좀 탐하기로서니.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