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깜깜한 중에 갑자기 불 켜진 듯 ‘불현듯(이)’

국민일보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깜깜한 중에 갑자기 불 켜진 듯 ‘불현듯(이)’

입력 2019-02-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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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때였으니 다수는 등잔을 켰고, 몇몇 집에서만 촛불 정도 쓰고 살았지요. 전기의 힘으로 작동되는 것이라 해봐야 저보다 큰 배터리를 친친 동여맨 트랜지스터라디오뿐일 적이었습니다.

동네에 전봇대가 죽 세워지면서 전기가 들어온다는, 말로만 돌던 일이 성사되나 보다 하고 애 어른 없이 들떠 있었습니다. 집마다 새까맣게 그은 부엌 천장과 처마 밑 서까래를 따라 전선이 모두 깔린 날. “해 지면 알전구에 불 들어와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면 직원이 돌아다니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전기가 뭔지 모르는 이가 태반이던 때라 반은 믿고 반은 못 믿던 차였는데 순간, 안방이며 부엌 등에 전기가 확 들어오는 거였습니다. 마루 밑 강아지와 눈이 주먹만 한 외양간 소도 놀란 건 한가지였지요. 30촉 알전구 둬 개 켜진 것이었는데, 신세계였습니다.

전깃불이 번쩍 켜진 것처럼 어떤 현상이 돌연 벌어지는, 어떤 행동을 갑작스레 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현듯’. 이는 ‘불 현 듯’이 변해 단어가 된 것인데, 이북 평안도에선 지금도 쓰인다는 ‘혀다’는 불을 붙이거나 일으키는 ‘켜다’의 옛말입니다. 그러니 ‘불현듯’은 원래 ‘불 켠 듯’의 뜻이지요.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떤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첫눈이 오니 불현듯 그녀가 보고 싶어’처럼 말하지요. 밤늦게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캄캄한 현관에서 스위치를 켜면 일순 환해지는 느낌, ‘불현듯’입니다.

머릿속에 지혜의 등불을 켠 듯 언제나 생각이 밝아 초롱초롱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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