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홍인혜] 시대의 속도, 사람의 속도

국민일보

[혜윰노트-홍인혜] 시대의 속도, 사람의 속도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 누군가는 느낄 소외감·불편함은 어찌하나

입력 2019-02-0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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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다. 한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왔는데 택시 승차장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평소 오가는 택시가 많은 곳이라 그렇게 오래 기다렸던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택시가 오지 않았다. 병원 진입로에서 사고가 났나, 오늘따라 내원객이 많았던 걸까, 찬바람에 떨며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한참을 서 있었는데도 택시는 거의 오지 않았고 이 속도로 사람들이 빠진다면 얼마나 기다려야 차에 오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는데 다들 별 수 없이 추위와 싸우며 막연히 택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후 회의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초조했다. 급히 핸드폰을 열고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앱 몇 개를 구동시켰다. 오래 뒤적인 끝에 겨우 택시가 잡혔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 저 멀리서 내가 예약한 차가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줄에서 빠져나가 택시 문을 열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줄을 선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며 나를 제지했다. 여기 오래 기다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새치기를 하냐는 거였다. 나는 다소 당황하여 ‘이거 제가 부른 콜택시인데요’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다들 떨떠름하게 물러섰다.

택시 안은 따뜻했다. 움츠렸던 몸에 훈기가 퍼지는 것을 느끼며 창밖을 봤다. 택시는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을 스쳐가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전의 사건을 떠올리며 다소 씁쓸해졌다. 정당하게 부른 택시를 탔는데 원성을 사서 억울했던 것이 아니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나름의 방략을 이용해 해결책을 찾는데 누군가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을 곱씹었다. 내 앞에 서서 하염없이 한길을 바라보던 노인을 떠올렸다. 그분은 핸드폰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거나, 택시를 부를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셨을 것이다. 나와 그분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이’의 문제일 것이다.

지난 명절에도 기차의 입석마다 노인들이 많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차 예매 시스템이 점점 편리해지고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기차표를 산다. 내 지인들도 명절 즈음엔 날마다 핸드폰을 붙들고 자리를 노리고, 예매했다 취소했다 하며 더 좋은 시간대로 옮겨가곤 한다. 하지만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은 그 모든 행위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역에 가서 역무원과 소통하며 기차표를 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이들은 불편을 감수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 나는 그 모든 문물을 다룸에 있어서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때로 변화를 환영하기도 한다. 음식점의 키오스크 주문 방식은 노인들을 소외시키지만, 나는 불필요한 소통이 줄어 편리함을 느낀다. 예전엔 각종 민원서류들을 떼기 위해서 일일이 관련 부서에 찾아갔어야 했는데 이제 클릭 몇 번으로도 출력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세상 좋아졌네’ 하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만족감이 영원할 것인가?

문득 어린 아기를 키우는 지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가서 작은 손으로 자꾸 화면을 누른다고 했다. 누군가 우리 아이는 수족관에 데려갔더니 그것도 거대한 터치스크린인 줄 알더라며 웃었다. 나는 생각했다. 화면은 전부 손만 대면 내 뜻대로 움직일 거라 생각하는 시대의 아이들과 브라운관 텔레비전부터 보아온 나 사이엔 또 얼마만큼의 갭이 있을까? 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산 아이들과 고불고불한 줄이 달린 전화기부터 써온 나 사이엔 얼마만큼의 차이가 발생할까?

시대가 변화하는 속도는 엄청나다. 그리고 거기엔 가속이 붙는 것 같다. 전에는 10년 걸릴 변화가 이제는 1년 만에 일어나고, 미래엔 1주일 만에 벌어질 사건일지 모른다. 어떤 변화는 발전이란 미명 아래 더 불친절해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소외시키기도 한다. 지금 비록 내가 그 변화의 속도가 감당이 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된 것일까? 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발이 느려 흐름을 제때 타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저 뒤처지게 둔다면 나도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시대는 늙지 않지만 나는 늙으니 말이다. 시대는 점점 빨라지지만 나는 더뎌지니 말이다.

홍인혜(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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