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길원 (13) 북한 사람 많은 양평에 ‘둥지’… 통일한국 불씨 살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송길원 (13) 북한 사람 많은 양평에 ‘둥지’… 통일한국 불씨 살려

언젠가 다가올 통일한국 내다보며 北 가까이서 호흡하고 싶은 소망… 자료 모으며 여성 지원사업도 참여

입력 2019-02-11 00:01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송길원 목사(오른쪽)가 지난해 경기도 양평의 청란교회 채플에서 오르간 제작자인 홍성훈씨와 함께 통일한국을 꿈꾸며 제작한 그림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는 경찰이 없네요. 들키면 언제 북송될지 모르니 늘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하고 살았습니다. 탈북 여성들이 말씀을 읽으려 해도 ‘쉿’, 찬양하려 해도 ‘쉿’, 소리 내며 기도하려고 해도 ‘쉿’. 참고 참다 마음에 병이 드는데도 저는 여전히 ‘쉿’하며 사는 ‘쉿’ 인생이었습니다. 흑암의 세력에 갇혀 고통받는 북녘땅의 여인들을 회복시켜주십시오. 평양에서 ‘러빙 유’를 진행해주십시오. 장소는 이미 정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사역지였던 산정현교회!”

하이패밀리의 대표 브랜드인 부부 행복세미나 ‘헹가래’와 함께 인기 프로그램인 ‘러빙 유’에 참가한 탈북 여성 선교사의 고백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하이패밀리가 서울로 이사했을 때다. 강력한 후보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이었다. 하지만 좋은 조건과 지원을 포기하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향했다. 이유가 있었다. 북한 가까이에서 호흡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통일한국을 내다보며 북한의 가정을 연구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해외 갈 일이 있으면 북한 가정은 물론 북한의 정치와 경제 관련 자료를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손에 잡히는 성과없이 세월은 흘러갔다.

이후 이곳 경기도 양평군에 둥지를 틀었다. 이 지역에 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밌는 이유를 들었다. 우리나라는 이전에 글을 읽을 때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읽었다. 옛 습관 때문인지 북한 사람들은 차를 몰다가 자신도 모르게 교통표지판에 쓰인 ‘양평’을 ‘평양’으로 읽곤 했다. 고향이 그리워 핸들을 꺾고 차를 멈춘다. 한두 가정이 어울려 살다 양평군 옥천면에 집성촌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북한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음식을 함께 해먹었다. 입소문이 났다. 그렇게 해서 인근이 ‘옥천 냉면 골목’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하이패밀리가 왜 양평에 자리를 잡게 됐는지 무릎을 쳤다. 하나님의 귀한 섭리였다. 처음 마음에 품었던 북한, 통일한국을 향한 불씨가 되살아났다.

‘양평에서 평양까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처음 슬로건으로 세운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의 다음 슬로건이 된 것이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성폭력 피해여성 돕기와 함께 북한여성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다.

2018년 청란교회 안에 세워진 유명 파이프오르간 제작자인 홍성훈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또하나의 꿈이 보태졌다. 홍 선생은 자신의 꿈을 내게 들려줬다.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탱크 자주포 소총 핵미사일 전투 비행기 지프 등 전쟁무기들이 아름다운 음향을 내는 파이프오르간으로 재생되는 꿈이었다. 생명을 파괴하고 평화를 깨뜨렸던 무기들이 평화의 합창을 노래한다? 통일한국을 꿈꾸는 내게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꿈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추진하기로 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이 떠올랐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평화의 나라를 꿈꾸게 됐다. 탈북여성들의 ‘쉿’ 소리가 꿈을 부채질하는 응원가로 들린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많이 본 기사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