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남도영] ‘좋아요’가 불러온 비극

국민일보

[돋을새김-남도영] ‘좋아요’가 불러온 비극

입력 2019-02-1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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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여친 인증 사진’을 일베 게시판에 올린 남성 15명이 입건됐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였다. 이들은 내밀한 여성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며 ‘내 여자친구’라고 주장했다. 일부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가짜 여자친구’ 사진을 올렸지만, 몇 명은 ‘진짜 여자친구’ 사진을 올렸다. 경찰은 “입건된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도 있었고 회사원도 있었다. 20, 30대가 대부분이었고 40대도 1명 있었다. 이들이 사진을 올린 이유는 일베 내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피의자 대부분은 네티즌 또는 일베 사이트 내에서 더 많은 관심(등급 상향)을 받기 위해 사진을 게시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여자친구 사진을 공개한 이유가 ‘관심’과 ‘등급 상향’이었다. 온라인상 익명의 다수로부터 ‘좋아요’(일베에서는 ‘일베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를 받기 위해 현실 여자친구의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셈이다.

타인의 관심과 이로 인한 우월감 혹은 심리적 만족감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일 수 있다. 중국 IT 기업 텐센트는 10억명 이상이 사용한다는 온라인 메신저 QQ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메신저 아바타를 꾸미는 아이템을 판매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의 원조는 사실 한국 IT 기업과 게임업체들이다. 공짜로 게임과 메신저, 커뮤니티를 제공하되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부가적인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메신저 아바타가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1000~2000원의 돈을 내고 아바타를 장식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간의 본능이 온라인 세계에서도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사람이 동시에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수는 150명 안팎이라고 설명돼 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1993년에 제시한 가설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불린다. 던바는 ‘친구’를 ‘예고 없이 불쑥 저녁자리나 술자리에 합석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로 규정했다. 인간 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고, 일정한 숫자 이상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 논리다. 휴대전화에 수천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는 사람도 1년에 한 번이라도 통화하는 사람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로마군의 전투 단위였던 백인대는 130여명, 군대의 중대 규모도 140여명, 원시 부족의 평균 규모도 150여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150이라는 숫자는 무한대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SNS에 올린 글과 사진에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커뮤니티에 올린 글은 수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와 비행기, 전화의 발명이 지리적인 한계를 극복했던 것처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출현은 인간관계의 새로운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문제는 기술 발전이 인간관계의 발전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온라인을 통해 수천 명과 연결될 수 있지만 이들과 소통하며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많은 이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며 소셜미디어를 떠나는 이유다. 실제로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줄고 있고, 극단적으로는 소셜미디어 중단을 선언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떠나는 신종 러다이트 운동이 대세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확장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다만 ‘좋아요’ 수천 개를 위해 친구 150여명의 신뢰를 잃는 어리석은 행동은 곤란하다. 타인의 관심보다는 진짜 여자친구의 삶이 훨씬 중요하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과 비용을 치르지만, 타인은 생각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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