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성욱] 비핵화 회담 첫 단추 잘 꿰어야

국민일보

[시론-남성욱] 비핵화 회담 첫 단추 잘 꿰어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성과 낮았던 1차 회담과 달라야… 북핵 공인되는 상황 저지해야

입력 2019-02-1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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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인내심을 가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생중계를 외신을 통해 지켜봤다. 82분간 진행됐지만 한 문장 읽으면 각료들이나 공화당 의원들이 일어나 박수치는 장면이 연속되어 몹시 지루하고 소모적인 느낌이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 관련 발언이 언제 나오나 지켜보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날 것이라고 짧게 이야기하고 베네수엘라 사태로 넘어갔다. 지난해 연설과 비교해 북한 문제에 관해 신중 모드였다.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 경험에서 볼 때 세계 유일의 3대 세습 국가인 북한과의 협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것인지, 물밑에서 실무협상이 진행되는 만큼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는 포커페이스 전략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허풍과 선전이 사라진 것은 2차 회담이 리얼리티 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날짜부터 잡고 의제를 논의하는 역순(逆順)의 여정은 1차와 변함이 없다. 시간 싸움에서는 워싱턴이 사회주의 종신 집권체제인 평양을 당할 수는 없다. 정상회담은 혼사 날짜를 정해 놓고 혼수와 예물을 준비하고 교환하는 단순 대소사가 아니다. 비핵화의 분수령으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1차와 유사한 패턴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성과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어야 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하노이 회담은 1차 회담의 ‘높은 기대, 낮은 성과(high expectation and low product)’라는 총평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북한 비핵화 협상을 둘러싸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비건 대북 특사가 57시간의 평양 실무협상을 마치고 서울로 귀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건의 평양 협상을 ‘매우 생산적인 만남(very productive)’이라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본인의 의도대로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하노이 회담을 기대해도 좋다는 의미인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1차 회담 직전 판문점에서 성 김 대사가 최선희 부상을 7차례 만났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정상이 덜컥 만난 싱가포르 회담의 합의문은 부실 자체였다. 실무협상에서 합의하지 못하면 최고지도자 간 만남에서도 합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1차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학습한 교훈일 것이다. 아직도 현장 협상에서 자식 또래인 김정은을 ‘어르고 달래서’ 본인 의도대로 합의문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2차 회담의 결과도 기대 이하일 것이다. 현장의 임기응변이 통하지 않음에 따라 사전 실무협상에서 구체적이고 정확한 합의안을 완성하고 정상이 만나야 한다.

트럼프의 트위터가 허풍이 아니라면 북·미 간에 제한적인 ‘스몰딜’이 구체화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현 상황을 ‘건설적인 지점’이라고 표현한 비건 대표의 발언은 양측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방향에 있어 일단 합의했다는 의미다. 북한이 제시한 안건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등의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 등일 것이다. 반면 미국이 제시한 당근은 대북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일 것이다. 미국이 시종일관 주장한 전체 핵무기와 미사일의 신고는 한발 후퇴한 것으로 판단된다. 양측이 구체적인 실행 카드를 동시에 혹은 병행해서 ‘주고받기’를 할 것인지는 여전히 난제다. 북한의 초미의 관심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부분적인 대북 제재 완화다. 반면 미국은 신고 문제에서 양보한 만큼 영변 핵시설과 ICBM 폐기를 입구로 해서 최종적인 비핵화의 출구에 도달하는 실행 로드맵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달 말 또 다른 생산적인 만남이 있을 것을 고대하고 평양협상이 아니고 평양만남이었다는 비건 대표의 발언으로 볼 때 합의안은 여전히 미완의 상태다. 스웨덴 2박3일, 평양 57시간 회담을 거쳤지만 여전히 정상회담을 불과 보름 앞두고도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으며 또 다른 만남이 필요한 실정이다. 위기-협상-합의-파기라는 지난 26년간의 북핵 협상 과정은 비핵화가 매우 지난한 과제임을 상징한다. 정부는 북·미 협상의 중매자와 촉진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청와대는 스몰딜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부인하고 한·미 간에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곧 있을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불완전 비핵화로 북핵이 공인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해야 한다. 첫술에 배 부르랴 라는 속담이 있지만 북한과의 비핵화 회담은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통념적이지 않고 변칙적인 리더들과의 비핵화 협상이 옆길로 새지 않도록 문 대통령은 내비게이션을 정확하게 작동시켜야 역사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남성욱(고려대 행정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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