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기본급+연공급 ‘기형적 임금체계’ 손질할 때 됐다

국민일보

낮은 기본급+연공급 ‘기형적 임금체계’ 손질할 때 됐다

[낡은 노동체계의 종말] ① ‘일한만큼 받는다’는 거짓말

입력 2019-02-11 19:11 수정 2019-02-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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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사용자와 근로자 간 근로계약이 이런 원칙에 맞게 이뤄지도록 정해놓은 법이 근로기준법이다. 그러나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 이래 퇴보만 했다. 낡고 기형적인 근로기준법과 현실 노동시장의 왜곡된 임금·근로구조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52시간 근로라는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민낯만 드러냈다. 그런데도 쌓이고 쌓인 문제를 풀 노동개혁, 사회적 합의는 제자리걸음이다. 4회에 걸쳐 한국의 임금·근로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지난해 2월 한국은 주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초과근로를 줄여 근로자 건강권을 챙기고, ‘일·가정 양립’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다. 사람을 더 뽑아야 할 경영계 반발은 당연했지만, 근로자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초과근로시간이 줄면 월급봉투가 얇아지기 때문이다.

‘일을 덜 하자’고 해도 선뜻 찬성하기 어려운 현실은 낮은 기본급을 각종 수당으로 메우는 한국 노동시장의 기형적 임금구조에서 비롯된다. 뒤틀린 임금구조는 통상임금 판단, 최저임금 산입범위·주휴시간 산정, 탄력근로제 확대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 나올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

현재 임금구조는 급속한 산업화라는 토양에서 자랐다. 수입한 원재료를 가공해 수출하는 산업구조에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임금경쟁력’이었다. 과거 정부는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 등을 내면서 근로자의 기본급 상승을 억제했다. 대신 기업은 각종 수당으로 불만을 달랬다. 전체 임금에서 기본급 비중이 50~60%에 그치게 된 이유다.

근로자들은 부족한 기본급을 초과근로수당으로 보전했다. 이는 기업에도 유리하다. 초과근로수당은 원칙적으로 기본급을 기준점으로 삼기 때문에 기본급을 낮게 유지하면 새로 사람을 뽑지 않아도 싼값에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연공급이라는 임금인상 방식이 결합했다. 기업들은 숙련공을 붙잡아 두려고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임금체계를 선택했다.

낮은 기본급과 연공급이 빚은 임금구조는 상당한 부작용을 잉태했다. 장시간 근로를 유도하는 낮은 기본급은 한국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시간 근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근로시간이 긴 만큼 생산성은 떨어진다. 11일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2.9달러로 미국의 52.1%에 불과했다.

기형적 임금구조는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노사의 법정다툼도 유발했다. 수많은 수당 중 무엇이 통상임금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초과근로수당, 퇴직금, 연차유급휴가수당 등이 널을 뛰기 때문이다. 연공급 역시 산업·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단순 제조업에서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무게추가 옮겨지면서 일반지식에 기초한 업무능력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근속연수만 차면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은 전문성 배양에 불리하다. 여기에다 빠른 고령화로 임금을 많이 받는 중고령 근로자 비중이 늘면 기업은 비용 상승, 생산성 하락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재의 임금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할 시점이 왔다고 지적한다. 우선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을 기본급에 넣는 등 임금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오계택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은 임금에서 기본급 비중이 80~90%에 이른다. 한국처럼 통상임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두고 소모적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연공급도 바꿔야 한다. 오 소장은 “임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기본급을 어떤 방식으로 책정하는 게 가장 적절한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공급을 대신할 임금체계로는 직무급이 거론된다. 상당수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다. 직무의 중요성, 난이도를 평가해 각 직무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게 직무급이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동일임금 동일노동)을 받는 셈이다. 해당 직무를 맡은 근로자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근속연수로 임금을 책정하는 연공급과 성격이 다르다. 독일은 산별노조가 직종별 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소속 기업이 따르도록 한다. 기업이 달라도 비슷한 일을 하는 근로자는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된다. 미국은 노동부 통계국에서 1000개가 넘는 민간기업의 각종 임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직무별 임금 수준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그보다 덜 주기 어렵다. 동시에 근로자도 더 받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은 당장 직무급 도입이 쉽지 않다. 사람 중심의 인사관리 방식은 직무중심 인사관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양한 직무를 평가하기 위한 분석 틀도 없을뿐더러 임금 정보 인프라도 구축돼 있지 않다.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는 일본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연공급 체계였던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임금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연공급을 폐지하고 직무급을 도입하면서 일본 특성에 맞게 이른바 ‘역할급’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직무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지만 각 근로자가 조직에서 맡은 역할등급에 따라 차등을 주는 식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투입’보다는 ‘산출’에 초점을 맞춘 임금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근로시간 투입량이나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지 말고, 성과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자는 것이다. 근로시간과 생산량이 비례한다는 공식은 깨지고 있다. ‘긱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가 확산되면서 근로시간의 경계는 더 모호해질 전망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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