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용서라는 길로 들어서기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용서라는 길로 들어서기

창세기 50장 17절

입력 2019-02-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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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중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일까요. 주일 아침 휴일 늦잠을 자지 못하는 것, 돈이 없는데도 헌금을 해야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겁니다. 가장 힘든 때는 용서를 강요받을 때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와 억울함도 모르면서 다 무시한 채 “죄 없는 예수께서 너를 위해 죽으셨으니 너도 그냥 용서하렴”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 힘들어질 겁니다. 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경우도 생깁니다.

용서를 억지로라도 해야 할까요. 반대로 욕을 하고 마음껏 미워하고 살아간다면 마음은 편해질까요. 더 큰 죄책감과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용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요.

오늘 함께 나눌 말씀에는 요셉이 등장합니다. 구약에는 용서에 대한 요셉의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와 매일 꾸는 꿈 이야기, 형들은 입어보지도 못한 옷 등 요셉이 가진 모든 것은 형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미움받던 요셉은 결국 형들에 의해 버림받아 부모와 이별하게 됩니다. 낯선 애굽 땅까지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는 동안 요셉의 마음에는 형들을 향한 미움이 있었을 겁니다. 성경에는 ‘그가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라고 적혀있지만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요. 요셉의 첫째아들 므낫세의 뜻이 ‘하나님이 내게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뜻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과거의 상처와 형들에 대한 미움이 싹트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온갖 고난을 겪은 뒤 애굽의 총리가 됐지만 분노를 잊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버렸던 형들이 나타납니다. 곡식을 사러 애굽까지 왔다고 합니다. 정반대의 위치에서 형들을 바라본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죽이고 싶은 마음, 그리웠던 마음이 뒤섞였을 겁니다. 자기들이 미워한 요셉이 애굽의 통치자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안 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수를 당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을 해하지 않고 화해하게 됩니다.

요셉은 고향 고센 땅으로 돌아와 다시 아버지 야곱을 만납니다. 야곱은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창 50:17)는 유언을 남깁니다. 요셉은 이때 형들을 비로소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뒤에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는 진짜 비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버지 야곱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죽는 순간까지 요셉을 위해 함께 울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상처와 아픔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을 다시 만난 뒤에도 마음속 가득 채워진 미움과 원망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요셉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용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제각각 가슴 속 응어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인 우리는 누군가의 용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봅시다. 교회 밖 세상은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루에도 미움과 원망으로 시작된 수많은 사건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야곱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 가족의 아픔을 위해 함께 울어줍시다. 눈물 속에서 주변인들이 누군가를 용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설사 자신의 내면에 아픔이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나를 위해 함께 울어줄 것입니다. 함께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의 첫걸음은 함께 울어주기입니다. 함께 설교를 나눈 모든 성도분에게도 용서의 기쁨이 있길 축원합니다.

이철희 성남 이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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