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정의도 원칙도 버렸다

국민일보

[염성덕 칼럼] 정의도 원칙도 버렸다

입력 2019-02-20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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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김경수 경남지사 법정 구속은 정권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시사 발언의 파장을 몰랐다면
무능한 대통령이고 알고도 밀어붙였다면 무책임한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대통령답지 않을 때가 있다. 국민 통합의 정치를 하지 않고 지지 세력만 챙기는 분열의 정치를 한다. 원칙을 중시하지 않고 편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국민은 100년을 내다보는 정치행위를 기대하지만 총선을 겨냥한 듯한 정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가수반이라기보다는 지역 정치인 같다는 지적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아주 정확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이 물증과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환경부가 산하기관 임원들이 사표를 내지 않으면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감사하고,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감사하며, 감사 대상자가 반발하면 고발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검찰이 입수했다. 블랙리스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4곳의 사장에게 사퇴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태우 전 수사관이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자 “문재인정부 유전자(DNA)에는 민간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청와대가 환경부와 산자부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전 정권 인사들이 직권남용 혐의로 처벌받았을 때 사필귀정이라고 여겼을 청와대가 신적폐에 대해 함구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단죄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 받던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한 것은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허익범 특검이 기소한 거의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증거와 법리, 양심에 따라 판결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김 지사와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적폐 판사의 판결’이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여당 대표가 “탄핵당한 세력들이 감히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하느냐”고 목청을 높인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청와대와 여당은 전매특허인 꼬리 자르기를 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 지사를 내칠 경우 지지자들의 반발과 문 대통령의 입지 약화를 우려했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자초지종을 소상히 밝히진 못하더라도 입장을 내놔야 한다. 섣불리 의견을 냈다가 꼬투리 잡힐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대선 과정의 선거 부정은 본인과 관련된 일이 아닌가.

이 정권이 추진하는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국책사업은 자칫 국가의 장래를 암울하게 할 수 있다. 현재는 24조원이 책정됐지만 시행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혈세가 동원될지 알 수 없다. 국책사업을 선정하면서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국가 재정 파탄을 방관하겠다는 작태일 뿐이다. 균형 발전이 아니라 동반 추락을 초래할지 모른다.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안기는 것이나 진배없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언론을 가리지 않고 예타 면제 국책사업을 비판했다. 이 정권에 관대한 언론마저 비판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증표가 아닐 수 없다. ‘다람쥐 도로’ ‘철새 공항’이라는 지적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국내 15개 공항 가운데 인천 김포 제주 부산 대구를 제외한 10개 공항이 만성 적자인 사실을 문 대통령만 도외시하는 듯하다.

갈등을 관리하고 해결해야 할 대통령이 지역갈등을 유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를 시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2006년 공론화되면서 부산·경남의 가덕도와 대구·경북의 밀양을 사업 후보지로 놓고 극심한 국론분열을 일으킨 사안이다. 중립적인 프랑스 업체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까지 났다. 가덕도나 밀양 모두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가름 났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5개 광역자치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아지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생각이 다르면 총리실에서 검증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영남 지역의 신공항 여론 동향을 파악한 문건까지 나와 동남권 신공항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번에도 광역자치단체들은 찬반으로 갈려 반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지자체와 주민들의 갈등은 더욱 극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발언의 파장을 몰랐다면 무능한 대통령이고, 알고도 밀어붙였다면 무책임한 대통령이다. 지역 정치인도 아닌 대통령이 지역갈등을 야기해서야 되겠는가.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 때 부산과 경남에서 압승하기 위해 동남권 신공항 카드를 꺼냈다는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총선 선거운동에 나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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