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명절 그리고 여행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남호철] 명절 그리고 여행

입력 2019-02-2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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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나갔다. 설은 민족의 대명절이다. ‘귀성’에 대한 설렘과 가족과의 기분 좋은 ‘만남’이 한동안 여운을 남겨준다. 하지만 전통적인 설 풍속도는 많이 변했다. 우선 차례에 대한 인식이나 부담이 확연히 달라졌다. 명절은 즐거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 않다. 매년 명절이 되면 사람들의 입에 어김없이 오르내리는 화두가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이다. 주부들이 떡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어물을 다듬자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쑤신다. 일부 유림은 명절 차례는 말 그대로 차(茶)로 간단한 예(禮)를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거나하게 차려내는 관습과 과시욕이 명절의 참된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추석 때 포털사이트에 ‘퇴계 이황 차례’ 등의 검색어가 인기를 끌었다. 퇴계 이황 선생의 17대 종손이자 성균관대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이 추석 때 “가족들이랑 근교로 나들이나 갈까 해요”라고 한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이제는 간편식으로 차려진 차례를 서둘러 지내고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여행지에서 배달 상차림으로 차례를 지내고 실속 있게 여가를 즐기는 것이 큰 흉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D턴 족’이란 신조어도 있다. 간단히 차례만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족끼리 여행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이동경로가 알파벳 D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글로벌 여가 플랫폼 기업 야놀자가 지난 15일 내놓은 ‘2019년 설 연휴 국내 숙박 및 레저 시설 이용행태’ 자료에 따르면 설 연휴 때 귀성에 앞서 여행을 즐기는 국민이 증가했다. 이는 연휴기간 숙박과 레저시설 예약 증가로 나타났다. 올해 설 연휴 기간인 2월 3~6일 야놀자 애플리케이션 숙박 예약 건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설 연휴(2월 15~18일) 대비 숙박시설 예약률이 150%가량 급증했다. 호텔의 경우 예약률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치솟았다. 이는 명절 연휴를 활용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설 연휴 앞에 주말이 끼어 있어 귀성 전 미리 여행을 다녀온 ‘역(逆) D턴 족’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됐다.

숙박시설 예약은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는 ‘호캉스’(호텔+바캉스)의 영향도 크다. 가족 단위로 온 투숙객들로 가득 찬 호텔에서 체크인을 위해 장시간 줄을 서야 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연휴기간 서울과 수도권에서 레저 활동을 즐긴 이들도 급격히 늘었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도 급증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일 평균 공항 이용객은 지난해 설 연휴(19만377명)보다 약 7% 많은 20만371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외 여행객 증가는 여행적자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여행수지는 166억5000만 달러 적자로 전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많았다. 여행수입액이 133억7000만 달러에서 153억2000만 달러로 늘어났지만 해외 출국자수가 2870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보이면서 여행지급액은 319억7000만 달러로 역대 가장 많은 데 따른 것이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저비용항공사(LCC) 취항으로 항공요금이 저렴해지면서 동남아시아 등 가까운 해외여행지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정부가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체공휴일 지정, 징검다리 휴일 사이 평일에 대해 임시공휴일 지정 등으로 황금연휴를 만들지만 국내보다는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내수 진작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임시공휴일 지정 취지는 무색해지고 오히려 해외여행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

말로만 생색내고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정서적 호소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비슷하고 무미건조한 축제나 관광지만 내세워서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감동·추억이 없는 곳을 방문할 만큼 관광객의 마음이 후하지 않다. 자발적으로 찾아오도록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한 이유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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