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적대적 공생관계 끝낼 때 됐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적대적 공생관계 끝낼 때 됐다

입력 2019-02-2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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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극우화는 보수의 변화와 혁신에 최대 걸림돌…
북한은 자의든 타의든 꼼수든 변화의 길에 들어선 게 현실
대북 혐오로 생존하는 시대 끝났다. 위반하면 더 가혹한 제재 전제로
보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갖고 북한을 다뤄 보라


이번 주, 우리에겐 커다란 두 가지 행사가 예정돼 있다.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와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한국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로 보수 진영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이는 내년 총선과 이후 대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내 정치가 변곡점을 지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것이 국내 정치에 미칠 파장 또한 매우 크다. 두 개의 빅 이벤트는 별개의 국내외 정치 행사다. 하지만 광복 이후 두 세력은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온 특별한 관계다. 분석해 보자.

#1. 현재로선 한국당은 예측이 가능하다. 정당이라는 게 지지층 이익을 대변하고, 여론에 반응하며, 그 여론이 목소리만 큰 우중(愚衆)의 의견으로 흘러갈 때 바로잡으려고 노력도 한다. 무엇보다 추구하는 가치를 내세우고,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정당의 할 일이고 존재 이유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권력 획득이 필요하다며 선택을 요구한다. 그런 시각에서 한국당의 전당대회 과정은 실패했다. 그다지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한국 정치의 역동성과 보수의 처지를 감안할 때 새로운 계기를 충분히 마련할 수도 있는 기회였다. 역시 기대는 기대로만 끝났다.

한국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미래와 보수의 가치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못했다. 전당대회를 규정짓는 단어는 ‘탄핵 찬반’ ‘태극기 부대’ ‘5·18 폄훼’ ‘태블릿PC 조작’ ‘저딴 게 무슨 대통령’ 같은 막말이나 욕설이다. 사실 진보와 보수라는 편 가르기 쉬운 이분법에 따라 보수라 칭하긴 하지만, 지금 상태의 한국당을 대한민국 보수의 대표 집단이라고 말하는 건 많이 민망스럽다.

이 모든 게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세력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이유는 일정한 지지세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보다 증폭된 이들의 목소리는 보수의 극우화 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극우화의 기저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문재인 정권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나라 팔아먹는 행위라고 단정 짓는다. 이 정권을 무조건 비난하고 저주하는 시각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북한을 보는 시각에서 출발한 혐오의 정치가 지금 보수 야당을 지배하려 한다. 퇴행적이다.

#2.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평양을 출발, 베트남으로 향했다. 하노이까지 열차로만 갈지는 확실치 않지만 의도적인 ‘열차 대장정’의 메시지는 읽힌다. 중국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생각나게 만드는 일정이다. 중국과 베트남과의 협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속내야 어떻든 조건만 맞으면 개혁·개방도 하겠다는 뜻도 외부에 넌지시 비춘다.

북한은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의 침략과 위협을 과도하게 포장해 악용한 전형적인 독재국가다. 오로지 그 전략으로 내부의 불만을 억누르고 3대째 왕조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런 북한이 김정은 들어서 변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의 효과이든, 핵 강국의 자신감이 붙어서든, 지금의 위기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해보려는 꼼수이든 현실은 그렇다. 미국이 현실을 그렇게 판단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하도록 강력히 압박하는 국면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이 미국의 이익에도 아주 부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1950년 남침 이래 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미국은 당연히 한국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이 먼저다. 하노이 선언에는 어쩌면 그런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

이런 동북아 정세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보수는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의 보수 세력과 북한 정권은 사실상 적대적 공생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상대방의 공고함이 나의 공고함이었다. 상대방이 강력히 무장하고 적대적으로 나올수록 나의 존재 이유는 더 강력하고 명료해졌다. 그런 적대적 공생관계가 무한히 소모적이었다는 건 한반도 역사가 보여준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희망과 기대 섞인 예상을 하는 이도 있고, 뭐가 나오든 비난과 깎아내릴 준비가 돼 있는 사람도 있다. 무슨 결과가 나오든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우리한테 최대한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보수가 극우화돼 결과적으로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한국 정치의 퇴행성은 극대화된다. 차기 한국당 지도부가 태극기 부대의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한 상호주의로 북한을 다뤄야 하는 이유다. 보수가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이 위기 모면 식 꼼수를 쓴다면 더 확실한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는 전제 아래서다. 북한을 다루는 시각이 변하지 못하면 보수는 화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이젠 통하지 않는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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