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백 칼럼] 생색내기용 ‘사회적 대타협’ 결과

국민일보

[김용백 칼럼] 생색내기용 ‘사회적 대타협’ 결과

입력 2019-02-2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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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의 확대 합의안은 사회적 대화와 타협 성과물이나 과대 평가는 금물
대화와 타협 주체들이 명분과 실리 챙기에 골몰하면 힘 없는 노동자들 고통받을 수 있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놓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인 지난 19일 극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고 나라가 온통 요란했다. 주 52시간 근로에 따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늘리는 문제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합의안을 만든 것이다.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기간 확대, 이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 침해와 임금 감소 방지 장치 마련이 골자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가 출범해 만든 첫 번째 성과이니 나름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 자체로 귀중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며 신속한 후속 입법을 당부했다. 합의된 내용이 지금의 경제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경사노위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불참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만 참여해 진통 끝에 지난해 11월 겨우 출범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여러 경제사회적 현안들을 사회적 대화로 풀어나가겠다는 데 있다. 이 기구가 효과와 성과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합의안은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통과한 공식 합의가 아니며 국회에서 법 개정 과정을 남겨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의제별 위원회의 합의안인 상태다. 만일 확정된 것이었다면 노동계에 거센 풍랑을 일으켰을 것이다. 산하 위원회에서 만들어진 합의안을 마치 완결된 합의인 것처럼 과대포장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이번 합의안은 노동계가 경영계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줘 탄력근로제 실시 여건, 즉 적용의 경직성을 유연하게 했다는 게 특징이다. 상대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아졌다.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3개월 넘는 경우에 대해선 근로시간을 일(日) 단위 대신 주(週) 단위로 정하게 했다. 사용자의 재량권을 확대한 것이다. 근로일 간 11시간 휴식시간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했다. 이마저도 ‘다만 서면합의 시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 기계 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단서를 붙여 사용자의 의무를 면제했다. 따라서 사용자는 정부가 정한 과로사 기준 ‘12주 동안 평균 60시간 노동’을 합법적으로 초과할 수 있다. 또 사용자는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 보전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불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 부분도 ‘다만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 보전 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붙여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했다. 노동계가 우려되는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건강을 보호하는 것과 임금 보전을 경영계에 크게 양보했다. 법규의 모호함이나 조건은 처음부터 회피할 여지를 열어놓는 거나 다름없다. 이번 합의안은 대규모 사업장보다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3% 수준이다. 양대 노총의 조합원이 200만명 정도라면 나머지 1800만명은 노동조합 없이 사측과 협의해 노동 조건을 만드는 힘든 상황이다.

이번 합의안을 만든 주체들은 무엇을 얻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4년 전 대타협을 만든 경험이 있다. 경사노위 전신인 박근혜정부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위원장 김대환)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으로 한껏 떠들던 때가 있었다. 2015년 9월 15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은 한국노총이 대화에 참여한 상황에서 만들어졌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관련한 합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은 1개월(취업규칙) 6개월(노사합의)로 하되, 특별연장근로의 허용이 종료되는 시점부터 적용한다’로 명시했다. 4년 전 합의 내용과 비교할 때 지금의 6개월을 다시 도출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지, 매우 대단한 것인지 의아하다. 일단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좋은 모양새를 만들어 일단락지음으로써 각자의 명분과 실리를 챙겼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고무적이고 경영계는 잠잠하다. 경영계는 경기 둔화 국면에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진작책을 촉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기대어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양대 노총도 크게 밑진 건 없는 듯하다. 한국노총은 대타협을 이뤄내 논의의 주도적 역할과 경쟁관계의 민주노총에 대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성과를 얻었다. 장외에서 반대만 해온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불참에 대한 비판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투쟁의 모멘텀과 노선 이견으로 인한 내부 분란을 외부 목표로 돌리는 기회를 갖게 됐다.

걱정스러운 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문제가 사회적 대화→사회적 대타협→다시 현장 노사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사회적 대타협’이란 명분을 내세우며 첫술에 배 부를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배곯는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여유로운 입장에서 생색을 내는 일이 과연 정당한 대화이고 타협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김용백 논설위원 yb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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