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탄핵 2년, 한국 정치의 처참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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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탄핵 2년, 한국 정치의 처참한 실패

입력 2019-03-1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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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성찰 없는 퇴행이 여전하고,
진보는 내편만 보는 정치로 무능력 드러냈다
양쪽엔 정파적 리더십만 있을 뿐 국가적 리더십은 없다
최대 실패자는 결국 국민 아닌가


대통령 탄핵 2년, 한국 정치는 실패했다. 두루뭉수리하게 정치의 실패라기보다는 어쭙잖은 진영 정치의 실패라고 보는 게 정확하겠다. 이런저런 구호만 난무했지 진보든 보수든 미래와 협상보다는 증오와 혐오에 기반한 정치만 했다. 그러니 총체적으로 처참한 실패다.

지도자가 탄핵된 그 보수당에서 사면 얘기가 나오고 극우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전당대회에서도 ‘박근혜 팔아 표 얻기’가 대세였다. 그리고 해답 없는 문제를 의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던졌다. 박근혜 사면.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은 혐의가 많아 법률적으로 사면 대상 자체가 안 된다. 비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대표와 원내대표가 슬쩍 거론하고, 중진들도 거든다.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내던진 건, 집권 세력이 통합을 반대하고 정치보복만 하는 못된 정권이라는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을 노린 것이다.

그 주장이 전임 대통령을 위한 것도 아니고, 보수 재건을 위한 것도 아님을 본인들이 잘 알 게다. 좀 더 확실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 어정쩡하게 대답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 본질은 전당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팔이’다.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실망이 점차 커지니 가장 강력한 반집권세력인 극우파를 일단 끌어들여 몸무게를 늘리려는 시도다. 주식으로 말하자면 실적 관계없이 테마주로 선전해 내다 팔고 빠지는 것과 같다. 극우파가 활개 치면 총선과 대선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걸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2년이 지났지만 탄핵 재활용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극우파도 끌어들이려는 몸짓은 과거 성찰 없이 구체제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박근혜를 풀어주지도 않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적을 공격할 때 ‘허수아비 만들어 놓고 때리는’ 논법과 비슷하다. 잠깐의 지지율 제고라는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보수 재건에는 재 뿌리는 행위다. 역사 속에서 다듬어져 온 자유를 유지하며 민주화를 전제로 점진적이고 책임 있는 개혁을 지향해야 하는 보수주의의 기본 철학은 볼 수 없다. 보수 야당은 여전히 퇴행적이다. 진짜 보수층은 보수 정치의 이런 실패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이 당사자라는 측면에서 정치 실패의 책임이 가장 크다.

탄핵을 계기로 나라를 바로잡겠다던 진보 세력, 아직도 나라 반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명분도 있고 인기도 높았던 적폐청산이란 신제품은 시간이 갈수록 깔끔하지 못한 일처리, 우리 편 자리내주기용 수사, 겁박주기용으로 사실상 전락한 지 꽤 됐다. 무엇보다 국정 여러 분야에서 성과와 진전이 없다. 이젠 전 정권 탓이라는 빛바랜 변명도 짜증 지수만 높인다. 진보 대통령의 국정 운영 결과는 날이 갈수록 비루해진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다른 건 다 깽판 쳐도 남북 관계만 잘 되면 좋은’ 시절이 아니다. 그건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단박에 안다. 냉혹한 국제문제인 남북 관계를 ‘감성팔이’로 다루는 태도는 실패를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다.

일부 보수 세력의 저주 섞인 공격에 굴복해서는 안 되겠지만, 건강한 시민들에게는 국가이익을 또박또박 계산하며 헤쳐 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못한다. 국가 생존과 나라 경영에 남북 관계 개선은 아주 중요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집권 세력은 그런 면에서 견제와 균형의 감각을 잃어버린 듯하다. 그러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가 실패한 경제정책을 두고 “나는 이상주의자였다”라고, 교수 시절에나 할 말을 소회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실력 없는 정권이라고 자인한 꼴이다.

진보 진영은 무엇보다 탄핵 이후 나라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다. 탄핵은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었다. 국정농단이라는 단순 구조가 아니다. 이 사건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누적된 구시대적 모순과 낡은 인식·관행을 끊을 수 있었던 현대사의 변곡점이었다. 회사로 치자면 CEO가 모든 부실을 한꺼번에 반영해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로 회사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이를 솜씨 있게 처리하는 데 무능력했다. 보통사람이나 젊은이들이 워낙 목말라했던 정의와 공정을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포장지에 그쳐버렸다. 구세력 저항 때문이란 건 시효가 한참 지났다. 근본 원인은 국가 전체보다는 내편 위한 정치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의 처참한 실패다. 많은 이들이 편향과 내로남불로 느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에 모든 걸 건 듯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을 거다. 합리적 진보층과 한때 지지했다 돌아선 중도층은 이런 여권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정의 무한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진보 또한 실패의 책임이 가장 크다.

2년 동안 두 진영은 한국의 정치를 운영하는 데 처참하게 실패했다. 양쪽 모두에 정파적 리더십은 있을지언정 국가적 리더십은 없기 때문이다. 더 큰 실패자는 이를 바라보는 보통사람들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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