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국회의원도 리콜하자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국회의원도 리콜하자

입력 2019-03-13 04:01

같은 선출직 공무원인데 자치단체장·지방의회 의원 소환할 수 있어도 국회의원은 못해
국민에게 선출권만 있고 파면권 없으니 배지를 다는 순간부터 국민을 우습게 여겨


국회의원을 ‘몇 명’, ‘어떻게’ 뽑느냐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각 당이 사활을 걸고 덤비고, 선거 때마다 출마자들이 줄을 잇는 걸 보니 국회의원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실제로도 국회의원들은 ‘선거만 없으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노래를 부른다. 월급 많겠다, 책임질 일 없겠다, 어딜 가든 큰소리만 치면 되고 대접은 대접대로 받으니 천상천하 이보다 좋은 직업이 있을까.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정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단 금배지라 자부심도 대단하다. 하다못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된다는 게 국회의원이다. 권한은 또 얼마나 센지 국회를 거치지 않고서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 없다. 걸핏하면 의원들 입에서 ‘헌법기관’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힘 자랑이자 우습게 보지 말라는 공개경고다.

헌법은 국회의원 의무를 비교적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권한이 큰 만큼 그에 걸맞은 의무를 준수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일 테다. 청렴해야 하고,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해야 한다.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해서도 안 된다.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실정법 위반이기 이전에 헌법 위반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4년간 국회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국회의원이 권력을 위임한 주권자의 뜻을 제대로 받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 감사원장·감사위원 등은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탄핵을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은 이미 경험했고, 사법농단 관련 법관 탄핵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탄핵하지 못한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의 경우 잘못이 있으면 주민들이 소환, 파면할 수 있으나 국회의원은 여기서도 예외다. 같은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불공정이다. 입법권이 국회에 있어서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적으로 당선이 됐다. 유권자는 이 의원이 민주당 노선과 이념에 맞는 의정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표를 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현재 민주당과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이 의원이 유권자가 위임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는데 정작 유권자가 제지할 법적 수단은 없다.

5·18 폄훼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위에 상정됐다. 하지만 오랜 경험칙상 징계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확률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당은 이 의원은 제명, 김진태 김순례 의원은 전당대회 후 징계 수위를 논의하겠다고 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이 의원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 의결이 필수인데 십중팔구 열리지 않을 게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으니 기대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국회나 정당에 자정능력을 기대하는 것보다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게 빠를지 모른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서 국회의원 임명권만 주고 파면권은 주지 않은 걸까. 어떤 잘못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국회의원의 행태는 이러한 제도의 미비에 기인하는 바 작지 않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레몬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소비자가 오렌지인줄 알고 샀는데 레몬이라면 리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다수의 선택이 꼭 옳은 건 아니다. 국민을 생각하는 좋은 국회의원이 될 줄 알고 뽑았는데 아니었다면 국회의원도 도중에 리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선출 권한만 있고 파면 권한이 없으니 국회의원들이 배지를 다는 순간 주권자를 우습게 여기는 거다.

국민소환제 도입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국민소환제를 명시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국민소환제가 세계 보편적인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2009년 영국 역사상 가장 큰 의회 스캔들이 터졌다. 세금으로 지원되는 수당과 경비를 허위로 청구해 주택 융자금을 갚는 등 개인적으로 착복한 의원들의 대형 비리가 드러났고 스캔들에 연루된 하원의원 46명이 사퇴했다. 여론은 들끓었고 영국 의회는 국민소환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80년 광주 발포 책임을 묻는 취재진에게 “이거 왜 이래”라고 한 전두환씨의 발언은 많은 국민에게 실망감과 함께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5·18 망언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그것도 모자라 주요 당직까지 꿰찼다. 제 식구라 차마 읍참하지 못하겠다면 국민들이 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소환할 수 있게 법을 만들고 국회의원은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 정말 낯 두껍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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