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서윤경] 돌덩어리에 사과한다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서윤경] 돌덩어리에 사과한다

입력 2019-03-14 04:02

우선 산과 바다 그리고 들판에 널려있는 세상의 모든 돌에게 심심한 사과부터 하겠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3월 당시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무지 가벼운 반도체 대신 돌덩어리 팔면 되겠다”며 내뱉었던 말 때문이다.

그때도 돌을 비하하려던 건 아니었다. 다만 돌에 가격을 매기는 일이 없다보니 쉽게 나온 말이었다. 누군가는 돌의 가치가 그렇게까지 우스운 건 아니라며 반박할 수도 있겠다. 인터넷 쇼핑몰에선 인테리어용 자갈돌 500g이 450원에 팔리고 ‘수석’이라 불리는 돌들은 비싼 값에 매매되니 말이다.

또 모르겠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의 뿌리가 개당 억대를 호가한 것처럼 인생역전을 할 수도 있고. 실제 1630년대 터키산 튤립은 경제적 황금기를 누리던 네덜란드에 처음 소개된 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시장에선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고 선물거래까지 등장했다. 뿌리 하나가 8만7000유로(약 1억6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돌덩이가 느닷없이 기자실에 소환된 것도 갑자기 매겨진 값어치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기업인들을 만나 “2월 중량기준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증가세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낙관론을 피력하기 위해 ‘중량기준 수출’을 들이댄 거였다. 하락하던 수출중량이 상승 반전했다고도 했다. 비슷한 시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표한 2월 수출액이 사상 최장인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였다. 가격기준의 산업부와 달리 중량기준을 들이댄 기재부를 꼬집기 위해 돌덩어리가 희생된 거다. 뭐 수천∼수천만t에 달하는 배 한 척을 파는 것과 비교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그럼 이 시점에 굳이 돌덩이에 튤립까지 들먹이며 긴 설명을 한 이유. 눈여겨봐야 할 다른 지점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부처는 ‘숫자는 속이지 않는다’는 말의 배신감을 여러 번 국민에게 줬다. 마치 중량기준 수출 자료를 본 뒤 돌덩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강한 배신감.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반복됐다. 경제지표는 청와대와 여당 눈치 보느라 유리한 것만 부각됐다. 가장 최근 자료인 고용동향 자료만 봐도 그랬다. 13일 통계청이 내놓은 2월 고용동향에선 15~64세 취업자 수가 늘었다. 실업자 수도 증가했다.

그럼 기재부의 해석을 보자. 통계청 자료가 나온 직후 내놓은 참고자료에는 ‘낙관적 전망’ 일색이었다. 긍정적 의미의 수치만 나열한 뒤 고용지표가 크게 개선됐고 상용직 근로자 증가 등으로 고용의 질도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자료다. 박근혜정부 때도 기재부는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다른데 말이다. 실제 이번에 나온 통계청 자료에선 60대 노인인구의 취업률이 높았고 허리 역할을 해야 할 30, 40대 취업률은 줄어들었다. 박근혜정부 때 취업률 고공행진의 진실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상근직 근로자가 많았다는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지금’이라는 시점이다. 돌덩이가 나온 건 20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있을 때였다. 총선이 다가오자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낙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당이 된 당시 야당이 경제실정론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자 기존의 경기비관론을 180도 바꾼 것이다. 정부도 이에 호응했다.

지금의 청와대도 박근혜정부 때 여당이었던 지금의 야당으로부터 경제실정에 따른 비판을 받고 있다. 20대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것도 경제 때문이었다. 내년 21대 총선에 명운을 걸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으로선 긍정적 경제지표를 보이는 데 주력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날린 원펀치는 정부로선 아팠을 법하다. 일부 구조적 위험요인만 언급하던 IMF는 이날 이례적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는 경고를 날렸다. 그런 정부에 이런 위로를 건네본다. 돌덩이에 뒤통수 맞아온 국민보다는 덜 아플 거라고.

서윤경 온라인뉴스부 차장 y27k@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