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호기심, 그것도 성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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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호기심, 그것도 성폭력이다

입력 2019-03-1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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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가 이슈로 떠오르면 가해자를 비난하던 시선은 어느새 피해자를 찾아간다. 신상을 털고 영상을 옮기고 지라시를 돌려보는 일은 하나의 패턴처럼 굳어졌다. 누군가의 피해가 싸구려 상품처럼 소비되고, 그것과 무관한 누군가는 억울한 루머에 피해를 당해 왔다.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수 정준영의 몰카 범죄를 놓고 온라인 공간에는 “정준영 동영상 구한다”는 글이 잇따랐다. 여성 연예인 여럿의 이름이 담긴 ‘정준영 지라시’가 공공연하게 돌아다닌다. 너무나 익숙한 수순이기에 거론된 이들의 대응도 빨라졌다. 일제히 입장을 내놓으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2차 가해란 이름의 더 집요한 성폭력에 당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성범죄의 상처를 다시 짓이기는 폭력,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이런 폭력에는 불특정 다수가 개입돼 있다. 영상을 나르고 지라시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 가십 삼아 즐기는 사람, 그런 심리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얽히고설켜 사회적 성폭력을 합작한다. 2차 가해에 대처하려면 성폭력의 정의를 더 확대해야 할 지경에 왔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호기심, 그것도 성폭력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보호돼야 하고 2차 가해의 행위자는 최대한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피해자 보호체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모니터링, 경찰의 끈질긴 수사, 사법부의 엄한 심판 등이 함께 작동해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단순 유포자도 적극 단속해 처벌하겠다는 수사 당국의 발표는 엄포에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관련 법안이 많다. 개인영상정보보호법을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를 겨냥한 법안들을 이제라도 처리하고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처벌과 제도로는 한계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찾아올 것이다. 2차 가해 영상물과 지라시가 내게 날아왔을 때, 이것을 클릭해 옮기는 건 정준영이 몰카 영상을 카톡방에 올린 것과 똑같은 짓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사건이 불거지자 경고장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 공간에 올렸다.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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