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영옥] 응답하라, 방탄소년단

국민일보

[여의춘추-손영옥] 응답하라, 방탄소년단

입력 2019-03-15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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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는 뮤직비디오 표절 의혹 단순히 부인만 하면 되나
우리와 달리 외국 저작물은 아이디어 원천까지 밝혀
지나친 독창성 숭배 벗어나 창작 도움 밝히는 건 문화의 힘


방탄소년단(BTS)이 예쁘게 보였던 건 멤버들이 화사한 민화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빌보드 화보에 실린 소식을 접하면서였다. 민화는 무명 화가들이 그렸다고 해서 홀대받는 장르였다. 학계에서 최근에야 재조명받는 민화를 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개념 아이돌’로 그들이 다가왔었다. 그런 방탄소년단이 국제적인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의혹을 제기한 이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베르나르 포콩(69)이다. 연출사진의 선구자인 포콩은 1970년대 마네킹에 옷을 입혀 상황을 연출해 찍는 ‘여름방학’ 연작으로 유명해졌다. 포콩은 방탄소년단이 2016년 발매한 앨범 ‘화양연화-영 포에버’의 화보, 앨범 ‘윙스’의 타이틀 곡 ‘피땀눈물’의 뮤직비디오 일부가 자신의 여름방학 연작 중 ‘향연’의 사진들과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된 뮤비들을 봤다. ‘피땀눈물’ 뮤비에 서양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 작가들의 작품이 등장하는 걸 보고 놀랐다.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 북유럽 플랑드르의 대표 화가 페테르 브레헬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반역 천사의 몰락’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서양 미술사의 걸작을 활용하는 데서 아시아가 아닌 세계 시장 공략을 목표로 처음부터 외국에 진출했던 방탄소년단의 세계화 전략의 깊이가 읽혔다. 서양미술에 대해 저 정도로 연구할 정도라면 뮤비 제작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콩의 존재쯤은 알았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도 들었다.

포콩의 여름방학 연작은 어릴 때 동생을 잃은 작가가 프랑스 남부 고향 마을로 가서 찍은 것이다. 형제의 추억이 어린 장소에서 추억의 놀이를 하는 상황을 각지에서 구한 소년 마네킹에 옷을 입혀서 연출했다. 방탄소년단의 뮤비와 화보에는 포콩의 작품 이미지를 언뜻언뜻 떠올리게 하는 연출과 구도, 소품과 장치 등이 반복적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대각선으로 길게 놓인 흰색의 만찬 테이블과 모닥불 이미지, 유럽 학생풍의 반바지 차림, 프랑스에서 청소년이 즐겨 마신다는 초록색 민트 음료, 눈 가리고 술래잡기, 기구 타기 등이 그렇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말 포콩의 한국 측 에이전시에 보낸 공식 입장을 통해 “BTS의 사진 및 영상은 포콩의 사진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유사성을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도 “촬영 때 흔히 쓰거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소속사의 주장대로 한국 법정은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영국 작가 마이클 케나가 2013년 제기한 ‘솔섬 사진’ 소송 사건이 대표적이다. A항공사가 자신의 작품 ‘솔섬’과 흡사하게 아마추어 작가가 찍은 사진을 광고에 쓰자 케나는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항소심에서도 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원도 삼척) 솔섬은 누가 촬영하더라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자연물이기에 사진 구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원고가 패소한 원심을 인정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유럽에서는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누군가의 업적 위에서 학문도, 문화도 발전해왔다.

외국의 저작물은 아이디어의 원천은 물론 시시콜콜한 도움까지 상세하게 밝히며 감사를 표한다. ‘장마당과 선군정치’의 저자 헤이즐 스미스는 ‘감사의 말’에서 한 페이지가 넘게 도움을 준 이들을 거명했다. 미술사에서 중요한 책인 ‘예술의 종말 이후’의 저자 아서 단토는 “나 혼자만 예술의 종말에 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강건하고 박식한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의 공동작업이 자신에게 엄청난 확신의 원천이 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아이디어의 원천을 밝히는 문화가 뿌리 내리지 못한 건 독창성에 대한 지나친 숭배가 근저에 깔려 있는 탓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장강명 작가는 이례적이다. 출세작 ‘한국이 싫어서’를 보자. ‘작가의 말’은 책을 쓰기까지 인터뷰한 사람, 참고한 블로그 등을 거명하느라 바쁘다. 방탄소년단의 뮤비 역시 누군가에게서 영감을 얻고 어딘가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을 것이다. 포콩의 한국 에이전시는 뮤비들이 제작되기 전인 2014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포콩의 대규모 회고전을 언급한다. 포콩은 “법적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 사진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이 기쁘니 ‘영감을 받았다’ ‘오마주 했다’는 표기를 해달라”고 제안한다.

소속사는 아직 어떤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들이 포콩이라는 사진작가의 존재, 국내 회고전의 개최를 인지했는지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아이디어는 보호받을 수 없다며 법의 방패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하다. 누군가의 노력과 창작에 자신의 음악이 조금이라도 뿌리를 닿고 있다면 그걸 밝히는 것도 한국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길이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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