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GM의 도시, 볼보의 도시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GM의 도시, 볼보의 도시

입력 2019-03-22 04:02 수정 2019-03-22 14:34

GM 도시 제인스빌이 겪은 제조업 붕괴의 고통은 7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고
볼보 도시 고텐버그는 미래 일자리를 고민하며 일의 정의를 바꿔보려 한다
일자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거대한 변화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나


지난주 각 신문 출판면에 ‘제인스빌 이야기’란 책의 리뷰가 실렸다. 어떤 신문은 눈물겹다 했고 다른 신문은 두렵다고 했는데 두 신문 모두 남 일 같지 않다고 썼다. 책은 공장이 떠난 도시의 문제를 다뤘다.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은 GM의 도시였다. 첫 쉐보레가 출고된 1923년부터 마지막 타호(SUV)가 생산라인을 빠져나간 2008년까지 GM 자동차 공장은 85년간 제인스빌의 삶을 지탱했다. 인구 6만명 소도시에서 많을 때는 7000명이 여기서 일했다. 그보다 많은 수가 관련 업체에 고용됐고 더 많은 사람이 이들을 상대로 자영업을 꾸렸다. GM이 제공한 시급 28달러 임금 덕에 넉넉한 중산층 생활을 누리던 이 도시의 부모들은 세뇌하듯 공장 취직을 권하며 자녀를 키웠다.

금융위기에 비틀거린 GM이 제인스빌 공장을 닫자 1만개 가까운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주민들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시급 10달러 안팎의 저임금 근로자가 되거나 전업을 위한 재교육을 받거나 다른 공장을 찾아 도시를 떠나거나. 책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풍경을 전하고 있다. 부모의 통장 잔고를 우연히 본 고교생 딸은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자기 용돈보다 적은 액수에 충격을 받는다. 실직한 중산층이 버거킹 점원과 마트 계산원 같은 일자리에 뛰어들자 원래 그 일을 하다 경쟁에서 밀린 이들은 알코올과 약물에 빠졌다. 시민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 ‘16:49’는 그렇게 무너진 가정의 청소년들이 하교 후 다음날 등교까지 방치되는 16시간49분의 실태를 담았다.

저자는 제인스빌이 ‘할 수 있다’는 시민정신을 가진 도시라고 했다. 사람들은 GM이 다시 공장을 열게 하려 뛰어다녔고 다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렇게 7년이 흐른 뒤 15%를 넘었던 실업률은 4%로 내려갔지만 통계 숫자를 바꾼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이었다. 나은 삶을 되찾은 게 아니라 힘든 삶에 적응한 데 가까웠다. 7년이란 시간도 만회해주지 못한 제조업의 빈자리는 두렵기만 하고 타지 공장을 떠돌던 ‘GM 집시’ 가장들의 삶은 눈물겨운데, 우리도 GM 공장이 떠난 군산과 조선업이 망가진 거제가 있어 남 일 같지 않다.

역시 지난주 스웨덴 고텐버그에서 들려온 일자리 뉴스는 뭐랄까, 제인스빌에 비하면 낭만적이고 조금은 황당했다. 이 도시는 볼보의 고향이라 불린다. 볼보박물관이 있으며 승용차 부문은 중국에 팔았지만 트럭은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무역과 제조업으로 살아오다 관광과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로 변모하는 중이다. 스웨덴 교통부와 공공예술국은 8억원 상금을 걸고 2026년 이곳에 완공될 새 기차역의 디자인을 공모했다. 역사(驛舍) 디자인을 내라 했더니 디자이너 2명이 ‘영원한 고용’이란 제목의 채용공고를 출품해 심사위원단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완공 시점에 맞춰 역에서 근무할 직원 1명을 뽑을 텐데 할 일은 출근과 퇴근뿐이다. 아침에 나와 전등을 켜고 퇴근할 때 끄면 된다. 근무 중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역을 벗어나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러 가도 좋다. 부업은 금하지만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창작 활동, 공동체를 위한 비영리단체 활동은 오히려 장려한다. 그 대가로 260만원부터 시작해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월급을 종신토록 지급하며 휴가도 주고 은퇴를 원하면 연금도 준다. 디자이너들은 재단을 만들고 거기서 자신들이 받을 상금 8억원을 굴려 그 수익으로 임금을 주겠다고 했다.

나름의 계산과 목적이 있었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자본의 증식 속도가 임금 상승보다 훨씬 빨라서 부의 양극화는 계속 심화된다고 했다. 여기서 착안해 은행에 문의했더니 8억원이면 120년간 저만큼 임금을 줄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양극화 원리를 고용에 활용해보는 구상이 가능해지자 시킬 일을 정해야 했는데, 고용 형태만 갖추고 업무는 직원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가 선택하는 활동이 곧 일이 된다. 지금 일이라고 여기는 것의 상당수가 미래엔 없을 것이다, 사람의 일은 이렇게 바뀔지도 모른다, 이제 일의 새로운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 거라고 한다.

GM의 도시와 볼보의 도시는 각각 현재 일자리와 미래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었다. 제인스빌의 문제는 이미 우리에게도 닥쳤다. 제조업 일자리는 매달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이 추세를 뒤집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인스빌 사람들은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줬다. 빠르게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도 결국 로봇과 AI로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니 고텐버그의 고민 역시 곧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일자리 문제를 불황의 결과쯤으로 여기는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듯하다. 훨씬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제인스빌이 그나마 시련을 견딘 것은 서로를 보듬어준 공동체의 힘이었고, 고텐버그의 실험 역시 공동체를 향해 던진 제안이었다. 우리 공동체는 얼마나 준비된 상태로 일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까.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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