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영권 빼앗긴 조양호… 낡은 기업 관행 바꾸는 계기 돼야

국민일보

[사설] 경영권 빼앗긴 조양호… 낡은 기업 관행 바꾸는 계기 돼야

입력 2019-03-28 04:01
지배구조 선진화, 의사결정 투명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해야 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부작용도 경계하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표에 부닥쳐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었다. 주주들에 의해 밀려난 첫 재벌 총수가 됐다.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오너 한 사람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던 한국식 기업 경영 관행에 마침내 제동이 걸렸다. 주총 결과가 나온 뒤 시장이 보인 반응은 이 사건의 의미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오너가 물러난다는 소식에 대한항공 주가는 상승했다. 그동안 오너 리스크가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었음을 방증한 셈이다. 이는 한국 기업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큰 요인이었다. 대한항공 주총은 우리 기업들이 과거의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들어 재계 일각에선 연금 사회주의란 비판이 나왔다. 옳지 않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해외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 캐나다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도 조 회장의 이사직 연임에 반대했다. 이유는 ‘기업 가치 훼손과 주주권 침해’였다. 27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 횡령·배임에 연루된 최고경영자는 90% 이상이 2년 안에 불명예 사퇴한다. 주주의 신뢰를 거스르고 사익을 취한 경영자를 끌어내린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오히려 경영자의 이런 행태에 그동안 너무 관대했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연금 사회주의 문제는 국민연금이 정부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성을 강화하는 별개의 사안으로 접근하는 게 옳다.

대한항공 주총은 대기업 오너의 경영권이 이제 성역이 아님을 선언한 자리였다. 기업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 아무리 오너라도 밀려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한국 대기업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온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 회장 일가는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으로 여러 차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는 많은 소액주주가 그의 연임을 반대한 과정에 영향을 줬을 게 분명하다. 대기업 경영자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기업 가치 제고를 최우선시하고 사회적 책임을 더욱 무겁게 여겨야 한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이렇듯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경영권 불안을 초래하는 부작용은 경계해야 한다.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오로지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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