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형석] 왜, 애국가를 바꾸려는가

국민일보

[특별기고-김형석] 왜, 애국가를 바꾸려는가

나라마다 국가엔 역사성 배어 있어… 섣불리 역사 청산하면 역사 파괴하는 결과 가져올 것

입력 2019-04-09 04:02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 청산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교육 현장이 술렁인다. 교과서에서 친일작곡가 9인(김동진 김성태 김재훈 안익태 이종태 이흥렬 조두남 현제명 홍난파)의 노래를 빼고, 이들이 작곡한 교가도 바꾸자는데 대상이 전국적으로 214개교다. 이 논쟁의 정점에는 안익태의 애국가가 자리한다. 1906년 12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숭실중학교를 퇴학당하자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서 활동한 세계적인 음악가다. 그는 미국에 체류하던 1930년부터 5년에 걸쳐서 민족운동과 애국정신을 앙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애국가를 작곡하고 그 창법을 이렇게 강조했다.

“애국가를 부를 때는 장엄히 애국의 정신으로 엄숙히 부르되 특히 동해의 ‘해’와 백두산의 ‘백’에 힘을 주고 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더욱 힘 있게 충만한 애국심과 활기 있게 부르십시오.”

애국가는 1936년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가 주최한 3·1절 기념식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940년 12월 20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안익태의 애국가를 인준했고, 임시의정원에서는 이듬해 제33회 개원식부터 애국가를 제창했다. 광복되자 애국가는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국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안익태가 친일행위자라는 논란이 일어나면서 애국가를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으나 그때마다 여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최근 애국가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또 다시 등장하고, 일부 언론은 여론몰이를 시도하고 있다.이해영의 ‘안익태 케이스’는 애국가를 폐기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러면 안익태는 친일파인가. 친일인명사전은 안익태에 대해 ‘개별적인 친일행위가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한 후 1940년 황기 2600년 기념 봉축음악인 ‘일본축전곡’과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만주환상곡’을 작곡한 것을 대표적인 친일행위로 지적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 활동을 두고 친일파로 정죄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반론 또한 적지 않다.

작곡가의 정치성을 놓고 국가의 자격을 따지자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것은 자녀에게 부모의 책임을 전가하는 연좌제와 다를 바 없다. 노래는 시와 음악이 만나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애국가는 가사나 곡조 어디에도 친일적 요소는 찾을 수 없고 말 그대로 애국가이다. 김구 선생은 1945년 11월에 출간된 ‘한국애국가’에서 ‘애국가가 광복 운동 중에 국가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기술했다. 이렇듯 애국가는 광복군이 부르던 군가였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눈물짓던 국외교포들의 망향가였다. 또 국제적인 운동경기가 열릴 때는 온 국민이 열광하며 부르던 승전가였다. 지난 80여년간 애국가만큼 대한인의 마음을 이어주고 정체성을 일깨워준 것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애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에 대한 논쟁은 있었다. 미국의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 Spangled Banner)’은 영국 술집에서 부르던 노래인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의 곡조를 차용했다. 독일 국가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는 가사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팽창주의를 상징한 1절과 성차별적 내용이 있는 2절은 제외하고 3절만 부른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자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지금도 그대로 사용한다. 프랑스도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이 집권하던 1992년부터 ‘라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바꾸자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2015년 파리 테러를 계기로 2016년을 ‘라마르세예즈의 해’로 정하고 국가 교육을 강화했다. 가사가 험하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서 통합 유럽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보다 프랑스 국민이 220년을 넘게 불러온 역사성을 존중했다. 이렇게 이들은 국가의 자격을 따지고 바꾸기보다는 이미 역사요, 삶의 일부가 된 국가를 지킴으로써 나라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교가를 바꾸고 애국가를 바꾸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섣불리 역사를 청산하면, 역사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 나라 역사를 부정하는 국민은 부정적인 역사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형석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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