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사람 사이의 화학반응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사람 사이의 화학반응

입력 2019-04-1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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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나는 광진구에 있는 장애 관련 단체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직무는 ‘장애인 활동보조인 코디네이터’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최근 ‘활동지원사’로 명칭 변경)을 연결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100여명의 장애인 회원과 100여명의 활동보조인 회원을 관리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과반수가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그들은 유머러스했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잠재력이 뛰어났다. 마음 맞는 활동보조인만 존재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는 장애인도 있었다. 경증장애인이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를 하며 짝을 지어 다니는 경우를 현장에서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코디네이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을 연결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너무나 잘 맞을 것 같은 두 사람이 한 달도 못돼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전혀 안 맞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며 파트너십을 뽐내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지 나는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예측할 수 없는 ‘사람 사이의 화학반응’이야말로 현장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어떤 활동보조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장애인 당사자의 삶이 바뀌었다. 그것은 활동보조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한밤중에도 나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는 장애인들이 있었다. 활동보조인이 갑자기 그만뒀다거나 활동보조인이 아파서 못 나오는데 어떡하느냐와 같은 문자였다. 새벽에 다리에 쥐가 났는데 옆에 아무도 없다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전화한 회원도 있었다. 활동보조인은 늘 부족했으므로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 며칠 전 강원도에 큰불이 났다는 기사를 본 순간, 나는 불길 속에서 절규하는 장애인들을 떠올렸다. 한밤중에 활동보조인도 없이 두려움에 떨 그들을 생각하자 모골이 송연했다. 나는 그 순간 8년 전의 장애인 활동보조인 코디네이터로 돌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힘들다는 이유로 1년 만에 코디네이터 일을 그만둬 버린 그때의 나를 내가 지금에야 책망하는 모양이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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