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두 침묵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두 침묵

마가복음 15장 33~39절

입력 2019-04-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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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5년 전 그날 우리는 푸르디푸른 바다 밑으로 무고한 305명의 생명이 가라앉는 비극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중 5명은 몸 일부라도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비극에 나라가 무너졌어도 세월은 흐릅니다.

차디찬 겨울이 가고 대지에 새싹이 돋고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이 피어오르는 봄이 되면, 안산의 부모들은 꽃보다 더 고운 아이들이 없는 봄의 잔인함에 다시 무너집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4월은 너무나 잔인합니다. 이 상실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에 준 상처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라지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요 평신도 신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의 모든 불의와 부조리를 폭로한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그 십자가 사건은 영원히 기억돼 인간의 죄성을 끊임없이 고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 15:37).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 두 번에 걸쳐 외친 그 큰 소리는 성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었고, 동시에 세상의 죄와 악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우주의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죄를 모르는 아들이 피조물인 인간의 무고로 죄인이 되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 우주적 부조리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하늘 아버지가 아들의 외침과 죽임에 침묵으로 일관하신 부조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묘하게도 우리는 세월호에 탔던 무고한 어린 생명의 죽음을 보며 이와 유사한 부조리와 의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로 인해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들의 절규와 죽음에 우리 부모세대들은 왜 침묵했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무고한 희생과 성부 하나님이 이에 침묵하신 이유를 압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속죄 제물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또 죄인이 되어 고발의 대상이 되었고 이와 동시에 인간의 죄에 대해 고발자가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방관과는 거리가 먼, 극치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부모들이 세월호 아들들의 외침에 오랫동안 침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고통의 기억은 빨리 잊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누구의 잘못을 밝히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냐고,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죽음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5주기를 맞는 오늘, 이제는 피해선 안 됩니다.

2000년 전 십자가 앞에는 두 침묵이 있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침묵과 예수를 고발한 유대 지도자와 군중의 침묵입니다. 역설적으로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발자들의 죄를 드러내시고, 동시에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비로소 엄청난 우주적 개벽이 일어났습니다.(막 15:38)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찢으신 휘장을 지나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지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으며 우리 성도들은 희생자 가족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희생자들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 질문과 고발에 우리를 돌아보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해자였다고 말입니다. 불의에 눈 감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였으며, 자기 욕망에 취해 이웃에게 피해 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방관하며 살아왔다고, 우리의 그런 죄로 305명의 생명이 가라앉는 것을 방조해 왔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자백과 회개에서 시작합니다. 이 고난 주간에 두 침묵을 깊이 성찰해 봅시다.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원장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는 칼빈신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 석사를,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사회윤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기독교 윤리학자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가 직영하는 고려신학대학원 교무처장을 거쳐 2017년 2월 원장에 취임했습니다.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과 순교 신앙으로 진리를 전하는 종들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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