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기영] 자치 수준은 지방의회 성숙도에 달렸다

국민일보

[기고-한기영] 자치 수준은 지방의회 성숙도에 달렸다

입력 2019-04-16 03:59

미국의 주 의회는 1619년 버지니아 의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버지니아에 만연했던 말라리아의 대응책을 위해 각 지역의 대표 22명이 주지사와 만나 회담을 가진 것이 주 의회의 첫발이었다. 청사조차 없이 시작한 주 의회는 400년이 지난 지금, 한 국가의 의회 수준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한국 지방의회가 겪은 지난 30여년 동안의 경험은 미국 주 의회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짧지만 비교적 빠르게 도약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발전 과정이 제도화보다는 전문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제도화의 필요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론적으로 지방의회 성숙도는 제도화와 전문화, 두 가지 기준에 의해서 논의된다. 제도화란 지방자치를 구성하고 있는 기관 간 경계가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돼 있는지, 기관의 구성이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만큼 분화돼 있는지,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이 보편적이고 공정한지를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전문화는 지방의회가 의회 진출을 목표로 하는 후보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보상을 제공하는지 여부나 의원을 보좌하는 전문 인력의 수, 지방의회 회기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제도화와 전문화의 과정이 별개로 이뤄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제도화 과정을 거친 이후에 전문화 과정이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제도화 이전에 전문화 과정이 선행됐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구체적으로 지방자치를 구성하는 기관 간 경계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 예로 지방의회 직원 임용권이 의회가 아닌 시·도지사 권한으로 명시돼 있는데, 이는 독립성을 지녀야 할 지방의회의 사무 중 일부가 단체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화의 미비는 전문화 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쳐 왔다. 지방의회 직원 수는 아직까지 국회의원 1인당 직원 수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3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당정청협의에서 ‘시·도의회 사무처 소속 사무직원의 임용권을 시·도의회 의장에게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지방자치를 넘어 지방분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국회의 입법 과정으로 넘어갔다. 지방의회 인사권 확보는 한국 지방자치의 수준을 더 높이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기영 서울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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