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육사신과 육정신

국민일보

[염성덕 칼럼] 육사신과 육정신

입력 2019-04-1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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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인사 검증에 실패한 조국·조현옥 수석은 具臣이란 지적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
나라에 이로운 육정신은 기대하지도 않고 해로운 육사신이 적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이태 전에 ‘간신(奸臣)’을 읽고 서평을 썼다. 부제가 ‘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망쳤는가’였다. 간신에 대한 저자들의 정의는 명쾌하다. 간신은 똑똑하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사리사욕을 추구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행동한다. 힘을 합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국가와 사회에 똬리를 튼다. 한 명을 처단해도 뿌리째 뽑히지 않는다. 아첨 모함 협박 파당 축재에 능하다.

이 책은 고려 공민왕 시절의 요승 신돈(辛旽), 실록을 왜곡한 조선 광해군 때의 문신 이이첨(李爾瞻), 지록위마(指鹿爲馬)로 널리 알려진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趙高) 등 중국과 고려, 조선의 간신 25명을 조명했다. 이들과 결탁해 국정을 농락하고 사익을 챙긴 세력까지 포함하면 간신 규모는 훨씬 늘어난다.

육사신(六邪臣)과 육정신(六正臣)은 간신(奸臣)과 간신(諫臣·임금에게 옳은 말로 간하는 신하)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육사신은 나라에 해로운 여섯 유형의 신하를 뜻한다. 구신(具臣·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고 단지 수효만 채우는 신하) 유신(諛臣·아첨하는 신하) 참신(讒臣·참소를 잘하는 신하) 적신(賊臣·반역하거나 불충한 신하) 망국신(亡國臣·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 간신(奸臣)이 육사신에 속한다.

육정신은 나라에 이로운 여섯 유형의 신하를 말한다. 성신(聖臣·인격이 훌륭한 신하) 양신(良臣·어진 신하) 충신(忠臣·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신하) 지신(智臣·지혜로운 신하) 정신(貞臣·지조가 곧고 바른 신하) 직신(直臣·강직한 신하)이 육정신에 속한다. 특히 정신(貞臣)은 녹봉(祿俸) 하사(下賜) 증여(贈與) 따위를 받지 않고 법을 받드는 신하를 일컫는다.

촛불혁명으로 혼군(昏君)을 폐위시키고 등극한 문재인 대통령은 전 정권과 다르게 국정 운영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인사 난맥상만 보면 도긴개긴이다. 달라진 것도 없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중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저렇게 흠결투성이의 인사를 골랐을까 싶을 만큼 한심하다. 북한 편향과 막말, 다운계약서 작성, 투기 의혹, 꼼수 증여, 잦은 위장 전입, 세금 미납 등 거론하기도 민망한 전력을 갖고 있는 인사들의 민낯이 낱낱이 공개됐다.

집권 초기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다짐했던 정권이 이래도 되는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사전 검증 단계에서 점검했고 국가정보원의 존안자료를 활용할 수 없어 검증에 한계가 있다며 억지를 부렸다. 오만하고 구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던 차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터졌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청와대 핵심 참모의 투기 의혹은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한 문재인정부에 결정타를 안겼다.

김 대변인과 최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고, 문 대통령이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는 선에서 청와대는 문제를 봉합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제 역할을 했다. 노 실장이 일부 후보자에 대한 부적절 견해를 보고하자 문 대통령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 정권에서 그나마 간신(諫臣)에 가까운 인사를 꼽으라면 노 실장일지 모른다. 장관 후보자 인사 파동 이후 치러진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여당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문 대통령은 보선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2명을 포함해 장관 후보자 5명의 임명을 강행했다. 그리고 국면을 전환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흠결이 불거졌다. 여당 의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 후보자와 남편의 ‘주식 편애’가 심했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나 살 걸 그랬다는 이 후보자 남편의 발언은 비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이 후보자 부부는 결격 사유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여론조사에서 부적격 의견이 적격보다 훨씬 많았다. 여당 의원들도 현안에 대한 이 후보자의 실망스러운 답변을 접하고 헌법재판관의 자질과 역량을 의심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야당은 조국 민정수석이 이 후보자 남편의 해명 글을 SNS로 퍼 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수석은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한 모양이다. 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말이다. 백면서생이 아니고서는 장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인선할 때마다 하자투성이의 인사를 걸러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조현옥 인사수석과 함께 구신(具臣)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구신을 기용하고 잇단 실책에도 문책하지 않는 문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 정권에서 육정신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육사신이 적기만을 바랄 뿐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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